산골의 밤은 일찍 찾아온다.멀지않은 곳에서부터 점점 어둠이 물들어오더니 순식간 그 안에 나를 가두고 말았다. 사위를 좁혀오는 칠흑 같은 어둠속에 혼자 있는 순간이 아늑한 품속에 든 양 오히려 포근한 느낌이다.산골에서는 빨리 내리는 어둠도 고즈넉해서 좋다. 산골의 밤 풍경에 스며드니 출렁대던 감성 또한 차분히 젖어든다.모든 것을 밀어놓고 무작정 떠나와 맞이하는 느긋한 밤이다.도심에서의 저녁은 재깍대며 돌아가는 초침소리에 눈을 맞추고 동동거리며 하루의 마무리에 급급했던 것이 일상이었다. 내 삶을 주어진 시간 안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것이
들꽃에 한번 반하고 두 번 반한다.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식물이다. SNS에 올린 꽃 사진을 본 혹자는 '사진은 빛의 예술이야, 찬란한 햇빛 아래 존재하여 대상이 아름다워 보인 거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꽃의 다양한 빛깔과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내말에 수긍하리라. 식물을 손수 키우며 생태를 지켜본 사람은 빛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리라. 온몸의 감각을 뒤흔드는 가을의 들국화, 청화쑥부쟁이다.식물을 품에 안은 봄날이 떠오른다. 자연과 들꽃을 좋아하는 선배의 종합선물세트 선물이다. 유독 한 식물이 가는 줄기가 축 늘어
몇 해 전 충남도의회 한 의원이 충남교육청의 정책 방향 중의 하나인 ‘더불어 살아가는 민주시민교육’을 비판하면서 특정 정당을 연상시키는 용어를 왜 사용하느냐 하는 일이 있었다. 단순한 헤프닝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현재 우리 사회가 민주시민교육을 바라보는 한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프리드리히 에버트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자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는 아무리 그 사회의 법과 질서가 민주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을 수용하는 주체가 민주적 생활
막내 동생이 태어났을 때 나는 초등학교 학생이었다. 산후조리를 도와주러 오셨던 외할머니께서 큰 걱정을 하시면서 일주일 만에 외갓집으로 가신 후 엄마의 크고 작은 일을 도왔다. 엄마의 설명을 듣고 가마솥에 밥을 하거나 연탄불에 미역국을 끓였다. 대문에 걸려있던 삼줄이 풀리는 세이레가 되자 엄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학교에서 돌아온 나에게 쌀 함지박을 주시며 방앗간에 가서 빻아오라고 하셨다. 영문을 모르던 나는 특별한 날에나 먹는 떡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에 기다림이 길게 느껴졌다.시루번을 때는 엄마를 보고 이제는 먹을 수 있겠다 싶었
산행을 위해 집을 나섰다.인적이 드문 산길에는 키 큰 나무들과 잡목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복잡 난해하다. 숲속을 헤집고 길을 만들며 오르려니 얼마 가지 못하고 체력의 한계인 듯 숨이 찼다.풀숲을 헤집으며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 마치 순례길 인양 그루터기에 앉아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목을 축였다. 오늘만큼은 내가 선택한 도전이 결코 무모하지 않았음을 자신에게 다시 한 번 반추하며 용기를 냈다.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는 산행에서 문득 오체투지를 떠올렸다.오체투지는 스스로 고통을 겪으며 온전히 부처님께 나를 맡긴다는 의미를 갖는 수행 방법
오래전 우리 반 생일 축하 담당자였던 녀석은 학년말 학급문집을 발간하는 편집장이 됐고 편집후기에 20년 뒤 독립기념관 겨레의 탑 아래에서 12시에 만나자고 적었다. 시간은 바람처럼 흘러 제 작년이 그 20년이 되는 해였으나 까마득히 잊고 있던 나는 부끄럽게도 전화벨이 울리고서야 녀석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쁨을 누린 적이 있었다. 한참 동안 각자의 20년 역사를 공유하고 난 후 헤어지려는 순간 녀석은 모든 아이를 물리치고 나와 둘이서만 사진을 찍자며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꺼내 들었다. 매일 한 장씩 그날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장
가을이다.“입추도 지났고 처서도 넘겼으니 계절로는 분명 가을이다. 허나 질기고 지루했던 장마가 끝나니 여름내 참았던 봇물을 쏟아 놓는 듯 늦더위가 집요하다”라는 글씨가 곱게 쓰인 하얀 모시 천이 맏딸 집 벽에 걸렸다.도화지를 오려 곱게 색칠한 6살 손자의 하트 선물과 함께 장미꽃 61송이를 품에 안으며 떡 벌어진 상차림 앞에 앉아 환갑주(還甲主)가 된 것이다.출가했어도 하루가 멀다 하며 친정집에 모여 어미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는 일이 허다하던 세 딸이 오롯한 솜씨로 생일상을 차린 걸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가슴이 뭉클했다. 아직 살림
내가 머무는 곳은 바람골이다. 강도 높은 바람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바람이 회오리처럼 휘돌아 집을 에워싸는 듯해 겁이 난다. 무더위가 여러 날 지속되더니 태풍을 부른 것인가. 태풍은 고온에서 일어난단다. 그렇다고 기상에 관하여 깊이 알고 싶지 않다. 다만, 바람의 제물이 될 나의 소중한 식물들을 단단히 단속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 집에 머물며 겪은 산 경험으로 바람을 맞을 채비를 서둘러야만 한다.나무에게 나뭇잎은 소중하다. 봄날의 햇살에 일렁이는 신록과 실바람에 살랑거리는 이파리의 몸짓은 눈부실 정도다. 바람의 몸짓이 다 좋은 것
그동안 우리나라의 교육은 두 가지 역할을 담당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을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됐으며, 그 과정에서 개개인도 부모 세대의 가난을 끊어버리고 계층이동의 희망 사다리로 인식하도로 만들었다.OECD 국가들의 대학진학률이 평균 40%에 머무를 때 우리나라는 80%에 육박했으며, 현재도 70%대에 이를 정도로 우리 교육의 양적인 성장은 세계의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그러나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육은 그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상급 학교 입시 중심의 과도한 경쟁 교
얼마 전 평소 남다른 교육철학을 실천하는 선배로부터 글을 하나 받았다. 선배가 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엽서에 일명 선배 체로 쓰인 글귀는 ‘관해난수(觀海難水)’인데, 신영복 님의 마지막 강의를 담아놓은 저서 에서는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합니다. 큰 것을 깨달은 사람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함부로 이야기하지 못합니다’라고 풀어 주고 있다.짧지 않은 직장 생활 중에 어쩌면 마지막 근무처 이동이 될 수 있는 나에게 선배는 무엇을 경계하고자 하는 것일까? 생각의 가지를 쳐내지 못하고 펼치고 가는 시간 흐름 속
나리꽃이 지고 있다.한여름 땡볕에서도 영롱한 빛을 발하던 꽃잎들이 하나둘 땅에 떨어져 함초롬히 비를 맞고 있다. 꽃잎을 떨구고 빈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비바람에 간간히 흔들릴 뿐 꺾이지 않고 서있는 모습이 가히 도도하다.찬란히 빛나던 태양도, 고고하게 내리던 달빛도, 별빛도 새벽이면 여지없이 이즈러지고만다. 언제까지나 머물 줄 알았던 내 젊음도, 청춘도….엊그제 거울을 보다가 흰머리 두어 개를 발견했다. 한 갑자(甲子)의 세월을 살아온 연륜이 새치머리 몇 올이 뭐라고 눈에 들어온 순간 가슴이 쿵하니 내려앉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
날씨도 바이러스도 볕들 날 없는 요즘이다. 일상에 일부러라도 햇살을 비추지 않으면 우울한 날은 이어지리라. 선인이 동토에 핀 매화를 보고자 남쪽을 향하여 나귀를 타고 떠났듯, 우리도 장맛비를 불사하고 보물을 보고자 길을 떠난다. 박물관에 '새 보물이 납시었는데' 알현하지 않으면 아니 될 것만 같아서다.국립중앙박물관은 문화재청과 함께 특별전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2017~2019’를 개최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지친 국민에게 선물이 아닐 수 없다.특별전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역사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기록과 선인의
이병도 충남도교육청 교육혁신과장우리 사회의 변화 및 기술의 발전에 따른 교육과 학교의 역할에 대한 변화 요구가 거세다. 이런 변화 요구 중에서 교사의 역할에 대한 변화 요구도 커지고 있다.교사의 전문성이란 교사에게 필요한 교과 내용과 일반 교육학 지식 등의 전문지식, 교수법, 학생에 대한 이해 등 수업을 중심으로 한 전문성과 교직관 및 소명 의식, 교직신념 등 교사 개인에 대한 교육적 인성 등을 말한다.우리나라 교육정책에서도 1950년 초등교육, 1960년대와 70년대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육,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대학교육과
고미영 충청남도교육청 연구정보원장이른 아침 장군봉에 올라 내포의 너른 뜰을 가슴에 가득 담아올 수 있는 것은 이곳에 와 살면서 얻은 기쁨 중 최고이다.나는 대원이 될 기회는 얻지 못했으나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15년 동안 대장이었다. 어디서나 그렇듯이 대장은 본인이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듯이 그 이상은 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나의 ‘치명적인 태생적 약점’(맏이에게 ‘꼭 해야 하는 일인데 할 사람이 없어’ 라는 말)으로 인한 시작은 그 후 지금까지 내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한 부분이 됐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깊
정상옥 수필가전화기를 통해 전해온 한통의 메시지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아침이다.꽃밭가득 만발한 족두리 꽃무리와 하얀 접시에 수박 두 쪽이 담긴 사진을 선물이라며 언니는 내게 보내왔다. 온라인상에서 수없이 날라드는 사진인 듯싶어 밀쳐놓으려는데 뒤이어 메시지가 왔다.얼마 전 사무실 앞 작은 공터에 뿌려놓은 꽃씨가 휴일동안 소담하게 꽃을 피워 한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에 선물이 돼 출근을 환하게 맞았다고. 책상 위에 누군가 갖다 놓은 수박이 또 어찌나 색이 예쁜지 그 또한 선물이라서 함께 나누고 싶었단다. 바람결에 일렁이는 작
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책장(冊張)의 침자리가 동서양이 같단다. 나라마다 책의 크기나 모양, 글씨를 쓰는 방식이 다르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는 지점에서 하나가 된 것처럼 정(精)이 흐른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속도는 달라도 침자리에선 쉼표처럼 한 호흡을 했으리라. 예전에는 종이의 질도 좋지 않았고 책장에 꽂은 소품도 흔하지 않았다. 책이 귀하여 한 권의 책을 여러 사람이 돌려보았으리라. 책에 메모나 장서인을 남기지 않으면, 그 책을 누가 소유하고 독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먼 훗날 책장의 타액은 독자의 이력으로
이병도 충남도교육청 교육혁신과장지난해 12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2019년 초·중등 진로 교육 현황’ 조사에 따르면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은 단연 교사였다. 초등학교에서 선호도 2위를 차지했지만, 중·고등학생들에게는 1위였다. 참고로 2009년과 2015년도 조사에서는 초·중·고교생 모두 선호도 1위 직업은 교사였다.이러한 추세를 반영하듯 교원 양성기관의 대학들은 성적 상위권 학생들이 포진한다. 특히 교육대학의 입학성적은 더욱더 그러하다. 당연한 결과로 임용시험을 거쳐 교직에 입문하는 교원들도 우수한 자원이다. 교사
고미영 충남도교육청 연구정보원장코로나 19로 인해 올해는 원 운영계획을 여러 차례 수정 보완하고 있다. 얼마나 자주 보았는지 이제는 쪽에 있는 그림까지 다 기억할 정도이다. 그만큼 우리 원은 학교와 밀접한 사업을 많이 진행하고 있다. 어떤 분류기준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수는 달라질 수 있으나 예산서 사업 꼭지로 보아도 수십 개가 있다. 이제 7월이 되면 하반기 사업 추진과 동시에 내년도 사업 계획과 예산 수립을 위한 금년도 사업 평가 분석을 하게 된다. 학교 현장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사업은 확대 발전시키고 부담이 되거나 이미
이장희 강동대학교 사회복지행정과 교수오대산 상원사를 찾아 가는 길목에 월정사가 있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1㎞ 넘게 전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장쾌하게 쭉 뻗은 전나무 숲길을 걷노라면 산중의 고요를 맛본다. 이 고요속에 월정사를 지나 맑은 계류길 따라 상원사를 오르면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등이 어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없는 감상곡이 되어 흐른다.자연의 신비에 따라 오대산의 야생화가 미소를 짓고, 조릿대 나무의 나부낌과 함께 바람에 쓸려 비파소리를 낸다. 상원사의 동종은 신라 성덕왕 때 만들어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이란다.
이 은 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아지트를 나선 골목이 유난히 밝다. 야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 그런가 보다. 글공부하는 분들의 한결같은 마음도 한몫했으리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하는 글벗이 있어 가슴은 어느 때보다 충만하다. 마치 늦은 밤 도서관을 나서던 십 대의 모습처럼 갸륵하다. 오늘처럼 순수로 가득한 날은 가슴에 무언가가 마구 꿈틀거린다. 아마도 조건 없는 사랑에 마음의 작용이 아닌가 싶다.혜안글방은 수필을 배우는 직장인의 소모임이다. 야학은 오 년 전 직장인을 위한 글쓰기 강연이 시초가 된다. 타인을 미약한 재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