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5일 세계적 의학학술지인 ‘영국의학저널(BMJ)’은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판매를 억제해 사람 건강과 환경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피해를 줄이기 위한 지역적·국가적·국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게재했다. 물론 판매 억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UV는 현재 전 세계 신차 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대중의 SUV 사랑이 워낙 뜨겁기 때문이다. SUV를 사실상 공해(公害)로 간주하는 ‘SUV 공해론’은 미국에서 2000년대 초부터 제기되었지만, 그간 SUV가 거침없
#"섬돌에 오동잎 지네"갑자기 단풍이 밀려들었다. 설악산 단풍이 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으나 지난 주말까지도 남쪽의 산야는 푸른 색깔이 좀체 가시지 않은 채였는데 말이다. 지난주 글 친구들과 포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강릉 여행을 했을 때 비로소 단풍다운 단풍을 만났다. 북상하는 내내 열심히 창밖을 내다보았는데도 단풍의 본격 기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강릉에 도착하자마자 풍경마다 이미 고운 빛깔이 활짝 물들어 있는 것이었다. 허초희(난설헌)의 생가에 들렀는데, 집을 둘러싼 나무들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 너무 고왔다. 모두 탄성
APEC 정상회의 때였다. 한미, 미중, 한중, 한일 정상회담이 숨 가쁘게 이어졌다. 온 국민이 기도하는 심정으로 경주발 속보에 귀 기울였다. 우리 기업, 무역, 민생, 평화의 운명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사장 주변은 달랐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호들이 터져 나왔다. ‘윤 어게인’. 경주 시내를 누빈 극우 집회에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윤석열을 구해줄 것이라는 기대 섞인 주장도 등장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시위대열에 청년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라의 미래가 걱정스러워졌다. 대책이 시급한 이유다.# 극한경쟁, 불안
지난 10월 25일은 청산리 전쟁 제105주년 기념일이었다. 항일 반제(反帝) 독립운동 중 부대 연합편성과 맞춤전술, 치밀한 정보전까지 더해 이긴 최고의 전투로 칭송되는 1920년 ‘청산리 대첩’은 4개월 전 벌어진 ‘봉오동 전투’와 함께 한국 무장 독립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역사적 사건이다. 당시 세계 최강 일본군을 ‘무력으로 싸워 이긴’ 독립전쟁의 상징으로 교과서에 실리고 영화로도 제작됐다.기념일을 맞아 서울에서는 관련 행사 2건이 열렸다. 오전에 ‘신흥무관학교 보훈 문화 대축전’이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에서 개최됐다. 오후엔 국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 식사 또는 술자리가 불편한가요?"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과 본인 또는 자녀의 결혼이 불편한가요?" 조선일보·케이스탯리서치가 실시한 2023년 신년 기획 여론조사에서 이 두 질문에 대해 ‘그렇다’는 응답이 각각 40.7%, 43.6%로 나타났다. 같은 해 6~8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사회갈등과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연애·결혼할 의향이 없다"는 사람은 58.2%였다.이런 조사 결과가 시사하듯이, 우리 사회의 정치 양극화가 심각하다는 데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르네쌍스’고 문인수 시인을 기억하는, 아주 작으나 우리로서는 의미 있는 일이 있었다. 대구 동구 시장 입구의 오래된 연립상가 2층에 있는 르네상스 다방을 그를 기억하는 공간으로 정하고 표식을 한 것이다. 그는 만년에 이곳의, 시장통이 내려다보이는 창가를 자신의 ‘관람석’으로 정했다. ‘낡은 호마이카 식탁이 대여섯 개, 비닐 커버를 씌운 철제 의자들, 크고 작은 화분들이 탁자 사이에 예 저기 놓여 있는’ 아주 소박한, 옛 도시 변두리의 다방 풍경을 여전히 갖고 있는 공간이다.이곳에서 그는 혼자 앉아 멍을 때리기도 했다. 더러 누굴
‘20대 남성의 58.7%가 윤석열 후보 지지.’ 2022년 대선 직후의 보도였다. 2021년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20대 남성의 72.5%가 오세훈 후보를 지지했다. 60대보다 높은 지지세였다. 꽤 낯선 풍경에 국민은 당혹해했다. ‘이대남’이 쟁점으로 부상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3년 지나 지난 10월 초, 이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에서 긍정 응답을 가장 적게 한 연령층도 20대였다. 이제 청년 보수화는 엄연한 현실이 됐다.# 청년 보수화, 언제부터 왜?청년 보수화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둔감했고 설마 했
요즘 노인들에게도 AI(인공지능)는 대세다. 손주 이름을 ‘AI 사주풀이’로 짓고 아이를 위한 시(詩), 곡(曲)까지 AI와 상의해 만든 노인이 있을 정도다. 자식이나 친구한테 털어놓기 힘든 고민도 AI에 스스럼없이 털어놓고 답변에 위안을 얻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고 한다. 시판 중인 어느 AI 돌봄 로봇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기상과 복약 아침체조 등을 챙겨주고 혈압 혈당 심박수는 물론 기분까지 신경 써 웬만한 동반자 역할을 한 지 오래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주문 따라 척척 생산그 AI를 손바닥 놀리듯 활용하는 한 노인에게 이런
최근 정치권에 전광석화(電光石火)라는 사자성어가 유행이다. 전광석화는 "번갯불이나 부싯돌의 불이 번쩍거리는 것과 같이 매우 짧은 시간이나 매우 재빠른 움직임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전광석화를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정치인은 단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청래다.정청래의 전광석화 타령은 그가 민주당의 당권 도전에 나선 지난 6월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6월 24일 밤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인터뷰에서 자신이 대표가 되면 "검찰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은 3개월 안에 전광석화처럼 해치우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6월 29일
#만다라골동품 가게들이 늘어선 역 근처 지하도를 지나다가 만다라 그림의 액자가 길가에 놓여 있는 걸 본다. 인쇄된 것인가 싶어 자세히 살피니, 손수 그린 것이다. 티베트나 동남아 불교 국가에서 흘러들어온 듯하다. 액자값도 안 되는 값으로 가져가란다. 거의 공짜인 셈이라, 나는 만 원짜리 몇 장을 쥐어주고는 냉큼 들고 나온다.그 만다라는 푸른 바탕에 중첩된 원형으로 가를 두르고, 그 안에 사각형을 또한 중첩 배치한 기하학적인 그림인데, 사각형 안에는 또 사각형이 들어 있다. 탑들이 바깥 사각의 네 변에 배치되어 원을 떠받치고 있는 구
나라가 많이 뒤숭숭하다. 격동하는 국제정세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 사정도 그 못지않다. 윤석열-김건희 발 짜증 뉴스에 개신교계 발 부끄러운 뉴스들까지 더해져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정통 개신교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된 신천지와 통일교뿐만이 아니다. 정통 개신교단의 지도자들까지 권력 유착 관련 구설을 쏟아내며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급기야 한미정상회담과 국익까지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도대체 우리나라 개신교는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87년 전 오늘, 개신교 치욕의 날87년 전 오늘, 1938년 9월 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양에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이 막바지 뜨거웠던 무렵 ‘윤석열 폭탄주’와 ‘김건희 V0(브이 제로) 권력’ 실태 기사가 화제가 됐다. ‘월간중앙’이 윤-김 부부의 탐욕과 폭주, 몰락을 관련자 증언으로 재구성한 특집이었다. 윤의 폭탄주 사랑과 그의 머리 꼭대기에 앉은 김의 일탈은 기왕에 알려진 얘기. 특별한 게 뭐 더 있겠냐 싶었으나 기사에 실린 증언 일부가 상상을 초월한, 가히 ‘폭탄’적이었다. 당연히 다른 언론이 받아쓰고 퍼 날랐다. 바로 이런 증언들이었다."취임 초 VIP가 거의 매일 술 마시느라 귀가하지 않아 경호원들도 심야까지 대기
나는 15개월 전 이 지면에 "왜 김어준 앞에선 과격해질까"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김어준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안달하는 민주당 정치인들의 행태를 지적하면서 "왜 그들은 김어준 앞에만 서면 작아지면서 그와 그를 따르는 강성 지지자들의 눈에 들기 위해 과격해지려고 애를 쓰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글이었다.그런 일이 워낙 많이 반복되다보니 이젠 그러려니 하고 무뎌진 게 사실이지만, 민주당 대표 정청래가 지난 5일 김어준 유튜브에 출연해 한 발언은 뜻밖이었다. 그는 국민의힘에 대해 "불법 계엄 내란에 대국민 사과와 진솔
#수박수박은 여름의 대표 과일이다.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고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사 먹던 과일이었다. 레드벨벳의 미니 앨범 ‘The Red Summer’ 에 나오는 빨간 맛 과일이 바로 수박이다. 우리와 친근한 여름 수박을 노래로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사 먹기가 크게 부담되는 과일로 바뀌었다. 유독 비싼 값 때문이다.수박은 오래전부터 서과(西瓜)라 불리어 온 우리 민족과 친숙한 과일이다. 원산지는 아프리카 북동부 사하라사막 지역. 한반도에는 고려 시대에 전래되었다. 원 간섭기에 홍차구가 개경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우
2017년 8월 12일, 꼭 8년 전 오늘이었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소도시 샬러츠빌, 로버트 리(Robert Lee) 장군 동상 주변에서였다. 끔찍한 사건이 있었고, 경위는 이랬다.# 샬러츠빌 폭동석달 전인 5월, 시 의회는 리 장군 동상을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버지니아주는 남북전쟁 때 남부연합군의 거점이었고 리 장군은 남부연합군의 영웅이었다. 리 장군 동상 철거는 흑인 차별의 잔재 청산을 의미했다. 공권력에 의한 흑인 사망 사건이 계속되면서 미 전역에서 흑인 차별을 상징하는 기념물 철거 운동이 확산되고 있던 때였다.그러자 동상 철
무더위는 어쨌든 입추(7일) 말복(9일) 처서(23일)를 지나며 조금씩 누그러질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권의 ‘불덩어리 싸움’은 이제부터 본격화할 것 같다. 말 그대로 ‘당의 목숨’, 생존과 해산을 건 양당의 건곤일척 대결이 8월 첫 주부터 뜨겁게 시작됐기 때문이다.싸움은 8월 22일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넘어, 어쩌면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공세의 고삐는 민주당이 쥐었다. 국민의힘은 당 해산 압박을 받으며 저항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정치 지형과 여론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계엄 내란
"군주는 미움을 받는 일은 타인에게 떠넘기고 인기를 얻는 일은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 이탈리아 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나오는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지도자 또는 리더들이 즐겨 쓰는 수법인데, 현대적 버전으로 말하자면 ‘굿캅 배드캅(Good cop-Bad cop)’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미국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의 베스트셀러인 [설득의 심리학]에 자세히 등장하는 이 전략은 원래 경찰이 용의자를 취조할 때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다. 먼저 ‘나쁜 경찰관(bad cop)’은 무거운 형량을 언급하며
#느린 우체통얼마 전 문득 편지를 받았다. 우체국의 소인이 찍힌 봉투를 뜯으니, 흰 종이에 빼곡히 쓴 글이 나왔다. "이형, 청(靑) 바다가 밀려오고 있소, 그래서 쓰오. ‘우리는 고독 속에서 또는 대중 집회의 군중 속에서 상처 주고 상처를 받으며 이 시대와 직면하고 있’기에 그 고독의 힘을 빌어서 쓴다고 할 수도 있소."라는 서두의 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보낸 이가 바로 나였다. 서두에 인용한 말은 파블로 네루다의 산문(자서전)에서 따온 듯하다. 어디서 쓴 편지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울산 바닷가. 간절곶. 작은 카페 구석에 앉아
내란 특검이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고 윤석열은 다시 구속됐다. 드디어 내란극복의 첫발을 뗀 것이다. 머잖아 내란의 전모가 드러날 것이고 관련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국민도 이제야 한숨을 돌리고 있다.# 내란극복의 최소한-책임자 처벌하지만 유의할 점이 없지 않다. 내란 공범들이 여전히 국가기구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서다. 사실상 내란에 동조해온 제1야당은 반성도 쇄신도 없이 야당 탄압과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맞서고 있는 것도 위협 요인이다.뿐만 아니다. 우리에겐 미진한 역사청산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 반민특위 실패가 대표적
내란 우두머리 피의자 윤석열 씨가 법원 재판과 특검 수사를 받기 시작하며 장외(場外)에서 기자들로부터 받은 질문은 수십 가지가 넘는다. 지난주 내란 특검 소환조사 때도 "평양에 무인기 침투를 지시한 게 맞나?" "사후 계엄 선포문에 어느 정도 관여했나?" "국민에게 사과할 생각은 여전히 없나?" 등 잇따른 질문을 받았다. 물론 답변도 사과도 없었다. 그는 그저 못 본 척 못 들은 척, 빳빳이 고개를 치켜든 채 먼 데만 보며 발걸음을 서둘렀다.계엄 선포 후 지금까지 윤 씨는 기자 질문에 대답한 적이 없다. 입을 앙다물고 시선을 딴 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