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네 사랑방에서는 아저씨들이 장기를 두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장기는 승패를 가리는 놀이이기에 두뇌싸움과 눈치싸움이 치열했다. 특히 옆에서 구경하던 이들이 끼어들어 한마디씩 훈수를 두는데, 훈수가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기에 선수들의 견제가 심했고, 괜한 간섭으로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장기의 훈수처럼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고객을 상대로 상세하게 상담하고 도와주는 활동인 컨설팅이 있다. 연구소 활동 관계로 여러 컨설팅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컨설팅 요청자의 자발성 정도에 따라 진정성이 있는 수행이 가능하지만,
요즘 부동산 규제 뉴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지방은 미분양인데, 수도권은 토지거래허가 확대, 대출 제한으로 묶였다. 문제는 이런 규제가 ‘투기 억제’라는 명분 아래 실수요자와 젊은 세대의 삶까지 옭아매고 있다는 점이다.‘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이라는 말이 있다. 욕망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생존의 언어다. 경기도 외곽에서 서울 여의도나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데 왕복 세 시간이 넘는다. 하루 절반을 이동에 쓰는 젊은이들에게 ‘영끌’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이다.영끌은 젊은 세대만이 아닌, 우리 기성세대의 초상이기도 하다. 우
가을 들판이 노랗게 물들어 가면서 논마다 고개 숙인 벼 이삭들이 황금빛으로 빛나는 계절이다. 요맘때가 되면 어린 시절 고향의 들판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벼 베기에 여념이 없으셨고, 어머니는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참을 내느라 분주하셨다. 어린 나는 볏단을 모아 집을 짓고 탑을 쌓으며, 친구들과 해 질 때까지 재잘거리며 놀곤 했다. 가마니에 알곡을 담고 차곡차곡 쌓아 올리던 그 보람과 기쁨은 지금도 마음속 깊이 남아 있다.알알이 영근 곡식을 보면서 문득 논에서 벼와 함께 자라던 피를 생각했다. 피는 벼와 함께 심지도 않았지만, 모내기하
한국 사회에서 "딱 보면 안다"는 말은 거의 모든 판단의 시작이자 끝이다.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몇 초 만에 상대를 평가하고 결정을 내린다. 그 빠른 판단이 능력처럼 포장될 때, 사회는 속도를 얻지만 깊이를 잃는다.본래 이 말은 직관의 언어다. MBTI로 말하자면 N(직관, intuition)이 중심인 NJ형(직관+판단)과 NP형(직관+인식)의 감각이다. 그것은 보이는 것 너머의 질서를 읽어내는 능력이며 수많은 성공과 실패, 생사의 경계에서 우러나온 ‘압축된 학습’의 결과다. 사업가에게는 시장 흐름을 감지하는 촉이며 의사에게는
충남 서남부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응급·분만·소아 등 필수의료 접근성이 취약하다. 특히 부여군은 중증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장거리 후송이 잦고, 야간·휴일 진료 공백도 상존하는 탓에 더 이상 임시대응으로 넘길 수 없는 상황이다.현재 부여군은 건양대 부여병원에 응급실 운영비 16억 원, 산부인과 외래 2억 원을 지원하고 있으며, 올해는 소아청소년과 3억 원을 추가해 총 21억 원을 투입하고 있다.충남도는 단기적으로는 지원을 늘리고 장기적으로 분원 설치를 검토한다는 입장이지만, 민간병원 지원 만으로는 지속성과 완결적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공직자, 특히 장관급 인사 후보자들의 자질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논문 표절, 자녀 특혜, 재산 형성과정의 불투명성, 정치자금법 위반 의혹 등 여러 문제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나면서, 일부 후보자가 임명되기도 전에 낙마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문제를 넘어 사회 전반에 깊은 혼란을 주고 있다. 이러한 혼란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공직자의 자격과 자질을 엄정하게 따지는 문화가 절실하다.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공직자의 자격과 자질 논란이 잦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사회적으로 개인의 학력이나
여행보다는 관광이 비교적 입체적이다. 하나의 관광 현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관광자(주체)를 비롯한 관광자원(객체), 관광사업(매체)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보와 기술, 제도적 장치, 행·재정적인 지원 등이 추가되면 선진형 관광형태로 진화해 나갈 수 있다.일반적으로 관광 주체들은 매력적인 곳으로 유혹당하는 형태와 스스로의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찾아 떠나는 구조다. 당기는 힘과 미는 힘이 작용하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하든 최종적으로 선택되는 대상에겐 늘 신선한 매력이 필요하다.이처럼 관광 주체의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헌터스’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무엇이 젊은이들을 이토록 열광하게 만드는가. 무대 위에서 터져 나온 "Up, up, up" ?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는 힘. 그 순간 관객은 환호했고, 무대는 완전히 빛났다. 그것은 말 그대로 ‘골든(golden)’한 장면이었다.이 정서는 기성세대와 뚜렷이 다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끌었던 세대가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인내와 절약, 근면의 정서를 살았다면, 오늘의 세대는 전혀 다른 언어를 택한다.K팝 데몬헌터스가 들려주는 "I’m born to be…golden"은
오늘날 우리는 과학기술과 사회 전반의 발전으로 인해 과거에는 단순한 상상이나 허황된 공상으로 치부되던 것들이 현실로 구현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인공지능, 우주 탐사, 가상현실, 생명공학 등은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망상’이라 불릴 법한 영역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망상이야말로 새로운 발명을 촉진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지금은 창의성의 핵심적인 토양으로 평가받는다. 망상이 창의성으로 어떻게 구현될까?첫째, 망상은 기존 질서와 규범을 넘어서는 발상을 가능하게 한다. 사회적 통념은 인간의 사고를 제한한다. 그러나 망상은 그 제약을 벗어
학교에 오면 늘 어두운 표정을 짓는 아이가 있었다. 수업 시간에는 꾸벅꾸벅 졸다가,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의 물건을 빼앗거나 괴롭히는 행동이 반복됐다. 보호자를 불러 상담을 진행한 결과, 한 부모 가정이었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직장 관계로 일주일에 한 번만 집에 들어오고, 대부분 시간을 할아버지와 지내고 있었다. 문제는 그 할아버지가 아이를 거의 매일 때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이처럼 학대받는 아이들의 심각성을 깨닫고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아동을 부모의 소유
한 중소기업 임원이 하소연한다. "새로 뽑은 직원이 석 달 만에 퇴사했습니다." 이런 일은 비단 중소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무원 조직이나 대기업도 다르지 않다. 젊은 세대는 자신이 ‘가치 창조의 주체’가 아닌 ‘대체 가능한 부품’처럼 느껴질 때, 미련 없이 일터를 떠난다. 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노동자를 떠올려보자. 하루 종일 같은 동작을 반복하지만, 완성품에 그의 이름은 없다. 마르크스는 이를 ‘노동 소외’라 불렀다. 또 상품 가치에 있어 만든 사람보다 상품 자체를 숭배하는 현상을 ‘상품 물신화(페티시즘)’라 했다. 이런
현대 사회에서 인간관계는 단순한 친분의 유지를 넘어,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복잡화는 오히려 인간 간의 직접적인 관계의 가치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디지털 시대라 불리는 오늘날, 우리는 SNS, 메신저, 이메일 등을 통해 쉽게 연결될 수 있지만, 그만큼 진정성 있는 관계는 찾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인간관계의 중요성과 그 기초가 되는 ‘신뢰’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인간관계는 개인의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성공, 나아가 공동체의 건강성에까지 직결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
벌써 30년 전, 일본 유학 시절의 한 장면이 지금도 선명히 떠오른다. 통근길,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 속에서 나는 실수로 잘못된 차선에 들어섰다. 급히 우회전해야 하는 상황, 옆 차선에 손을 들어 양해를 구했다. 그 순간,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옆 차량이 조용히 멈춰 서 주었고, 나는 무사히 방향을 틀 수 있었다. 바쁜 출근 시간대에 긴 차량 행렬 속에서도 경적을 울리는 차가 단 한 대도 없이 기다려 주고 배려해 주는 모습에 미안함과 함께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사람이 밖을 나서게 되면 신발을 신듯, 자동차는 이제 생활의 기
대한민국에서 통일을 두 차례나 직접 경험한 도시는 어디일까. 바로 충청남도 논산이다. 논산은 역사적으로 두 차례나 통일의 전환점이 된 도시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 신라 김유신 장군이 황산벌 전투에서 백제 계백 장군에게 승리하고 삼국통일의 대업을 실현한 곳이 논산이다. 이후 고려 태조 왕건도 후삼국 통일의 마지막 승부를 이곳에서 완성했다. 두 번의 통일이 시작된 도시, 논산은 단순한 전투의 공간이 아니라 통일의 상징이자 전략의 결절점이었다.이제 논산은 과거의 기억을 딛고, ‘K-국방의 미래’를 설계하는 전략 거점으로 다시
노먼 맥클레인의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은 삶의 상실과 사랑을 강물에 비유한 명작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이렇게 말한다. "Eventually, all things merge into one, and a river runs through it." 결국 모든 것은 하나로 합쳐지고, 그 중심에는 강이 흐른다는 뜻이다.그러나 지난 30년간 한국 사회의 흐름을 돌아보면 이 ‘하나로 합쳐지는 강물’이 꼭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정부의 자금, 사람들의 기대, 자산의 가치까지 모두가 하나의 방향으로 쏠렸다. 그 끝은 한강이고, 아파
본격적인 휴가 시즌이 시작됐다. 도심의 무더위와 일상의 반복된 리듬 속에서 우리는 종종 삶의 의미를 잊곤 한다. 휴가는 단순히 일을 멈추고 어딘가로 떠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몸과 마음에 진정한 쉼을 허락하고, 자기 자신과 삶을 재정비하는 소중한 시간이다.현대 사회는 속도와 효율을 숭상한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잘하라는 압박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기계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 과정에서 피로는 축적되고, 창의성은 메마르며, 인간관계는 소홀해진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휴식’이다. 휴
조직 생활을 하게 되면 여러 사람이 모여 현장의 다양한 사례와 개선 방안을 나누는 자리가 많다. 그때마다 어느 한 사람이 유난히 발언을 독식하는 경우가 있다. 다양한 경험을 강조하며 과거 본인이 주도했던 프로그램이나 지도 사례를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자기 생각이 맞는다고 주장을 펼친다. 토론의 대부분 시간을 그 한 사람의 경험담으로 채우다 보니 정작 다양한 현장의 의견은 공유되지 못하고, 회의가 끝나버려 아쉬움이 너무 많았던 기억이 난다.이런 것은 진정한 의미의 리더십이라기보다는 권위적이고 자기과시형 행태에 가깝다. 즉 구성원에게 영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불거진 학벌 비하 발언이나 여성 노동자에 대한 경멸적 언행에 놀랐다. "넌 학벌도 안 좋지?", "노동자가 국회의원 사모님이 됐다"는 말에는 여전히 출신, 이념, 직업, 학벌로 사람을 판단하는 시대착오적 위계 의식이 깃들어 있다. 우리 민낯이다.산업화 이전, 노동은 창조이자 예술이었다. 목수는 나무를 다듬고, 재단사는 천을 엮어 옷을 완성했다. 결과물은 자율성과 창의성으로 빚어졌다. 그러나 산업화는 인간을 반복 작업에 가두고, 전체를 잃은 채 ‘부분’만 수행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단편적 기능에 특화된 새로운 엘리
현대 사회에서 유튜브는 단순한 동영상 공유 플랫폼을 넘어, 정보 습득, 오락, 교육,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스마트폰과 인터넷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튜브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소통과 창작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과 개방성은 긍정적인 효과뿐 아니라 여러 부정적인 문제점도 동시에 수반한다.유튜브의 긍정적인 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정보의 접근성과 다양성이다. 특정한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영상으로 쉽게 접할 수
미국에서는 학생이 규칙을 어겼을 때, 교사는 공개적 꾸중 대신 일대일 면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면담을 통해 교사는 "넌 원래 이런 아이가 아니야. 네 안의 더 나은 모습을 믿는다"라고 말하며 그 학생의 자존감을 살려 주면서 마음을 고쳐먹고 바른길로 가도록 한다.이런 과정을 거친 학생에게 학급에서 스스로 규칙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겨 주어, 책임을 다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한다. 아이들의 교육에도 품격과 신뢰의 언어가 필요하다.품격이란 사람이나 사물에서 드러나는 고상하고 훌륭한 인품이나 품위, 또는 그 가치와 격조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