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들꽃에 한번 반하고 두 번 반한다. 기억 속에 오래 남을 식물이다. SNS에 올린 꽃 사진을 본 혹자는 '사진은 빛의 예술이야, 찬란한 햇빛 아래 존재하여 대상이 아름다워 보인 거야'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꽃의 다양한 빛깔과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라면 내말에 수긍하리라. 식물을 손수 키우며 생태를 지켜본 사람은 빛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리라. 온몸의 감각을 뒤흔드는 가을의 들국화, 청화쑥부쟁이다.

식물을 품에 안은 봄날이 떠오른다. 자연과 들꽃을 좋아하는 선배의 종합선물세트 선물이다. 유독 한 식물이 가는 줄기가 축 늘어져 바닥으로 드러눕는다. 꽃가지에 지지대를 세워주고 마른 떡잎을 따며 해말끔하게 서 있길 주문한다.

시월의 어느 날인가. 줄기 끝에 까슬까슬하게 솟은 작은 꽃봉오리를 발견한다. 하루가 다르게 줄기마다 봉오리를 맺더니 꽃이 벙근다. 별들이 하늘이란 배경을 흔적 없이 지우듯, 꽃들이 옹기종기 줄기를 뒤덮고 피어나기 시작한다. 시월의 밝은 햇살을 받은 꽃송이들은 마치 하늘의 별빛처럼 눈부시다. 바로 청화쑥부쟁이다. 지루한 여름을 보내고 식물의 생태를 직접 보고 느껴보라는 의미이다. 선배는 이렇게 청초한 꽃 화분을 나에게 선물한 걸 알고 있을까.

꽃은 가까이에서 봐야 예쁜 것도 아니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것도 아니다. 시인의 시구도 사유의 깊이를 더해야만 할 것 같다. 꽃은 매일 곁에서 숨결을 내주며 생장을 함께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전부가 아니다. 꽃은 자연에서 피어난 듯 자연스러워야 더욱더 보기 좋다. 이런 생각은 절집 곳곳의 너부러진 청화쑥부쟁이를 보고 나서다. 선방 뒤로 난 좁은 길 양가에 핀 쑥부쟁이 무리는 저절로 피어난 듯 매혹적이다. 시월의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청화쑥부쟁이. 풍경을 아무리 훌륭하게 광각렌즈로 담는다고 해도 황홀한 들꽃의 이미지를 재현할 수 없으리라. 꽃이 스러진 후엔 이 계절을 하염없이 기다리던가 아니면, 뇌리에 꽃무리를 저장하여 두고두고 불러보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역시 선배도 스님도 남다른 분이다. 사람을 알아보고 자연미를 발견하는 혜안과 들꽃을 향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고 당도한 곳이 산골의 소박한 절집. 선방의 창문에는 백학이 물을 머금고, 법당 쪽창에는 늦가을의 연지 풍경이 한유하다. 예사롭지 않은 목문과 나무창에 새긴 조각이다. 무엇보다 절집 곳곳에 핀 토종 꽃에 반한다. 절집을 무無에서 유有로 자연스럽게 가꾼 스님의 생애가 바로 쑥부쟁이다.

쑥부쟁이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누군가 봐주길 기다리지 않는 들꽃이다. 차를 나누고 절집을 돌아서는 길, 스님은 까맣게 그은 얼굴에 눈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웃는다. 눈가에 부챗살처럼 퍼지는 주름과 미소에, 나는 불쑥 스님의 손을 한번 잡아보자고 청한다. 부여잡은 손에서 쑥부쟁이 전설이 이어지는 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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