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골초였다. 여사님 성화에 못 이겨 담배를 끊었다고 공언했지만 끝내 끊지 못했다. 대통령시절, 문재인 혹은 부속실 직원에게 담배 한 개비를 빌리기도 했고, 참모와 몰래 화장실에서 끽연하기도 했다. 그는 눈높이가 낮았다. 정확히 말하면 눈높이를 잘 맞췄다.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는 주민들과 하천을 청소하고 나무를 함께 심었다.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탔고, 정치담론보다 오리농법을 얘기했다. 주민들과 항상 같은 높이에서 있었다. 문재인은 민초였다. 청와대 수석 이후 그는 경남 양산에서 농사꾼으로 살았다. 책 보는 시간 빼고는... [나재필 기자]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蒸氣)기관은 기술을 바꾼 게 아니라 세상을 바꿨다. 대량 생산과 대량 운송은 규모의 경제를 낳으면서 자본 운용과 생산체제의 변화를 가속화시켰다. 일일이 사람들의 ‘손’을 거쳐야만 했던 일들이 ‘기계 손’에 의해 해결됐다. 공장들은 덩치가 커졌고, 엔진은 일 년 내내 쉼 없이 돌아갔다. 이는 거대 상업화로 연결됐다. 단순한 기체라고만 여겼던 증기를 열에너지로 활용한 발상은 다양한 발명의 플랫폼 구실을 했다. 1차 산업혁명의 매개, 와트의 증기기관은 ‘시대’를 대표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시대'를 바꾼... [나재필 기자]
▶309.36㎞. 아들을 만나기 위한 ‘반바퀴’ 거리다. 편도가 자그마치 서울~대전을 왕복하고도 남는다. 편지 한 장 달랑 남기고 전방 부대(部隊)로 떠난 지 딱 두 달 만이다. 새벽 4시, 강원도 양양으로 떠난다. 한눈팔지 않고 내달려도 4시간이나 걸린다. 다소 먼 여정이지만 줄달음친다. 보고 싶어서, 보고 또 보고 싶어서. 김정은이 나대고, 시진핑이 눈치보고, 트럼프가 오락가락하는 요즘, 나라 지키는 일은 고행이다. 가끔은 이런 불가항력적인 구속에 항거하고 싶어진다. 국가는 국민을 보위하고 행복하게 할 의무가 있다. 4대 ... [나재필 기자]
▶이사를 또 했다. 내 생애 스무 번째다. 대략 2.5년에 한 번꼴이니 거의 유목민 수준이다. 태어나서 스무 살까지 여섯 번, 자취방을 전전하고 장가를 가면서 열네 번 보따리를 쌌다. '이사'란 하면 할수록 몸집이 분다. 모으긴 쉬워도 버리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이 비웠다. 헌집의 것들은 온전치 못한 것들이어서 이미 버려질 운명이었다. 이사를 마치자 일상이 엉키고 생각이 엉켰다. 새집에서 자꾸 헌집 생각이 났다. 헌것과 새것은 내뿜는 그림자마저도 둘로 나뉜다. ▶이삿짐을 푼 첫밤은 언제나 당혹스럽다. 왠지 모를 이물감... [나재필 기자]
▶세계 최고령 나무는 미국 캘리포니아 인요 국립 삼림지에 있는 히코리나무, 일명 '므두셀라'다. 나이가 무려 4848세다. 가장 크고 몸집이 좋은 나무도 캘리포니아에 있다. '하이페리온'의 키는 115m가 넘는다. 수령은 약 800년. 밑동 둘레가 48m로 어른 20여명이 손을 맞잡고 안아도 버겁다. 자이언트 세쿼이아(제너럴셔먼) 한 그루면 주택 40채를 지을 수 있다. 운반하려면 덤프트럭 3000대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강원도 정선 두위봉 주목으로 수령이 약 1400년이다. 이 나무들은 '살아 천 년,... [나재필 기자]
▶장미(薔薇)는 붉다. 그래서 로즈(Rose)다. 붉다는 것은 열정이다. 사랑, 질투, 미움, 반목마저도 뜨겁게 삼킨다. 잘록한 몸매, 도도한 자태는 나비며 벌 그리고 온갖 열망들을 유혹한다. 남자들을 불러 모으고 심지어 여자까지도 불러들인다. 발정 난 향기는 남녀 심벌을 스쳐 지나며 도회적인 치부를 드러낸다. 장미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는 24~27℃다. 인간이 가장 맛있게 잘 수 있는 온도와 같다. 장미가 뜨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온대성 상록관목이기 때문이다. 5℃만 돼도 스스로 생육을 정지하고, 0℃이하가 되면 휴면에 들... [나재필 기자]
▶대통령의 비운(悲運)은 대한민국의 비참한 역사를 관통한다. 헌정사(憲政史·70년가량) 11명의 대통령 중 8명이 비운으로 끝났다. 박정희(5~9대 대통령)는 자신의 심복 김재규에게 시해됐다. 김재규는 재판장에서 '민주화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독재자의 심장을 쏘았다'고 말했다. 박정희의 후광으로 대통령이 된 박근혜(18대 대통령)는 국가를 사익공동체로 여기다가 영어의 몸이 됐다. 이승만(1~3대)은 부정선거로 쫓겨났고, 윤보선은 군사쿠데타로 도중하차했다. 최규하는 헌정사상 최단명(10대·8개월)이었다. ‘육사 친구’ 전두환(... [충청투데이]
▶어제 본 벚꽃이 오늘 졌다. 눈부시게 찬연하던 생명의 소실이 너무도 급박하다. '벚꽃'은 무언가와 결합됐을 때 비로소 빛이 난다. 바람과 결합하면 '벚꽃 비'가 되고, 달빛과 결합하면 '벚꽃 엔딩'이 된다. 벚꽃은 희로애락의 얼개가 없다. 한순간의 젊음이 별안간 늙어버림으로써 처절하게 생멸을 드러낸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 가장 화려하게 웃는다는 건 '반어법'이다. 다른 나무와 달리 꽃이 먼저 피고, 꽃이 질 때쯤 잎이 나오기 때문이다. 죽음으로써,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건 치명적인 은유다. 1주일을 짧게 살다가는 시한부인생이 ... [나재필 기자]
▶(2004년 여의도에서 박근혜와 조우했을 때) 그의 손은 차가웠다. 심줄의 악력에서 묘한 상실감마저 전이됐다. 그 냉혈은 명징한 얼굴과 전혀 섞이지 않고 따로 놀았다. 아버지의 어둠과 어머니의 절규를 닮은 듯 했다. 정확히 따지면 닮은 듯 다른 낯섦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몰락하던 당(黨)을 차가움으로 구했고, 침몰하던 세종시를 냉혹함으로 살렸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강직할 줄 알았다. 수컷답지 않은 수컷들이 득세하는 세상에서 수컷보다 잘해낼 줄 알았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청와대(푸른 집)서 끌려나와 '푸른 방(감옥)'... [나재필 기자]
▶전화가 울린다. 발신자 번호가 찍힌다. 여론조사 기관이다. '누가, 누가 좋냐'고 묻는다. 마치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는 식이다.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불청객의 질문은 당돌하고 불손하기 그지없다. 귀찮고 짜증스럽다. 보통의 사람들은 세 가지 방법으로 응답한다. 대충 번호를 찍거나, 뚝 끊거나, 스팸 처리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조사는 탁상의 수치로 끝난다. 문제는 이 엉성한 숫자가 모여 여론으로 둔갑된다는 사실이다. 부동층이나 무응답자가 40%를 넘는데도 ‘신뢰도’ 어쩌고저쩌고 한다. 사회 대중의 공통된 의견인 ... [나재필 기자]
그 바다의 아픔이 지상으로 떠오릅니다. 우리의 참척(慘慽)도 다시 떠오릅니다. 세월호 1073일…. 차마 용서해달라는 말은 할 순 없어도, 속죄하고, 속죄합니다. 그리고, 애타게 그 이름을 불러봅니다. 꽃잎처럼 흩어진 가여운 그 이름을 불러봅니다. 1년 물살이 2800번 바뀌는 맹골수도(孟骨水道), 그 수천(水天)에 떨어진 꽃잎이 물경 300여명, 고백컨대, 세월호 침몰은 '사고'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입니다. 그날, 바닷물이 차오를 때 두려웠습니다. 얼어붙은 체온 더듬으며 두려웠습니다. 그 짐승 같은 ... [나재필]
▶'해'와 '바람'이 내기를 했다. 지나가는 나그네 옷을 벗기는 게임이었다. 바람이 먼저 나섰다. 휘휙~ 바람이 불자 나그네는 옷깃을 더 단단히 여몄다. 이번엔 해가 온기(溫氣)를 뿜었다. 그러자 나그네가 슬슬 외투를 벗기 시작했다. 힘만 믿고 불어댄 바람이, 서서히 내리쬔 해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강한 것보다 부드러움이 더 강할 수 있다는 이솝 우화 '해와 바람'의 얘기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모순이자 패착이다. '해'는 빛을 만듦과 동시에 그림자를 만든다. 어둠을 몰아내면서도, 어둠에 약하니 불완전한 존재다. ▶199... [나재필 기자]
▶茶山 정약용은 정조와 함께 살고, 정조의 죽음과 함께 몰락했다. 다산의 후견인이었던 정조가 승하한 후 신유사화가 일어났고, 남인의 탄핵으로 측근(자)들이 줄줄이 참화 당했다. 兄 정약종은 참수됐고 약전은 완도, 다산은 강진으로 유배됐다. 귀양살이는 무려 18년 동안 이어졌다. 헛헛한 세월이 무심하게 흐르던 어느 날, 아내 풍산 홍 씨가 빛바랜 다홍치마를 보내왔다. 시집 올 때 입었던 옷인데 애틋한 그리움을 우회적으로 함의한 것이다. 다산은 치마를 잘라 두 아들에게 편지를 쓴다. "우리 집은 망한 가문, 폐족(廢族)이다. 폐족... [나재필 기자]
▶최순실은 허상이 아니다. 꾸며낸 픽션도 아니다. 실존인물이다. 국가와 국민을 농락하고 조롱한 실제 마녀 이야기다. 바보 같은 대소 신료들이 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무지렁이 기업들도 돈줄을 대며 머리를 조아렸다. 뒷배를 봐준 사람이 없었으면 가능한 일이었을까. 미치지 않고서야 장관과 수석(首席)들을 갖고 놀면서 국가 상대로 사기를 칠 수 없다. 만약 서민이 '최순실 같은 짓'을 저질렀다면 어찌됐을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벌써 단두대에 끌려갔을 것이다. 힘없고 빽(background)없는 서민은 죄를 묻는 동시에, 죗값을 치... [나재필 기자]
▶돈 없이는 한발자국도 못 움직인다. 돈을 써야 먹고 입고 살아갈 수 있다. 돈도 돈이지만 나라에 세금도 바쳐야한다. 그래야 도둑도 잡아주고 깡패도 잡아준다. 4500원 짜리 담배 한 갑을 사면 3300원이 세금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이름도 배꼽을 잡는다. 건강 망치는 담배에 '건강증진기금'이라는 명칭이 붙는다. 소주 한 병을 마셔도 주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 세금이 72%다. 자동차도 세금으로 달린다. 휘발유 가격의 62%가 세금이다. 10만원 주유하면 6만2000원이 세금이다. 서민들의 마지막 꿈인 로또도 세금... [충청투데이]
▶시범케이스는 단번에 '여럿'을 잡기 위해 '하나'만 족치는 전술이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은 야비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모범'적인 것을 '시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모범적이지 않은 시범이기 때문이다. 장점은 조직 관리에 있어서 리스크도 적고, 후폭풍도 약하다는 점이다. 시범케이스를 내세우면 공포가 전이되며 삽시간에 기강을 잡을 수 있다. 타깃이 된 사람은 아주 죽을 맛이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속으로 웃는다. 그런데 시범은 시범으로만 끝난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비열함이 조직을 들쑤셔 조직이 물렁해지기도 한다. 군기... [나재필 기자]
▶인류는 질병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여왔다. 1348년 발생한 흑사병(페스트)은 불과 4년 만에 2500만명(유럽인구의 3분의1)을 몰살시켰다. 1918년 유럽에 퍼진 스페인독감 땐 20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1차 대전 사망자(900만명)의 3~5배가 독감으로 죽은 것이다. 우리나라도 같은 해 '무오년 독감'으로 14만명이 사망했다. 에볼라는 아프리카 콩고 북부의 작은 마을 얌바쿠를 끼고 흐르는 강 이름이다. 1976년 이 마을에 들이닥친 괴질 바이러스로 주민 모두가 눈·코·입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갔다. 에볼라로 인해 201... [나재필 기자]
▶산다는 것은 결절이다. 성공과 실패, 확신과 후회, 행복과 불행, 사람과 사랑이 결합돼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서로 끊어져있다. 모두의 삶은 다른 듯 같다. 삶이란 나쁜 짓만 안하면 일정한 틀 속에서 비슷하게 돌아간다. 한마디로 그게 그거다. 저 사람 일상이 곧 본인의 일상이다. 삶의 문법이 닮았다는 얘기다. 가족을 건사하고 남은 생을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 인간 본연의 원형질이지만, 사실 그때가 되면 늦다. 걸어 다닐 기력조차 없는데 여행이 호사일리 없다. ▶교사·교수의 길을 걸었더라면 행복했을까.(연수·방과 후 수업·담... [나재필 기자]
▶겨울이 깊어갈수록 어둠의 총량도 커진다. 어둠은 그림자다. 그림자는 때로는 두려움으로, 때로는 외로움으로 감정을 증폭시킨다. 필연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두려움과 외로움의 넓이가 확장된다. 주변의 사람들이 서서히 곁에서 떠나가기 때문이다. 아들을 군에 보낸 후, 여럿이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 남들은 유난스럽다고 지청구를 주지만, 어쩔 수가 없다. 심지어 아침 점호시간(동계기준 6시30분)에 맞춰 기상하고 구보도 한다. 떨어져 있지만 동류의식,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서다. 살을 에는 날씨에 천변으로 나가 뜀박질을 하는 건 곤욕이다... [나재필 기자]
▶눈물은 불가피할 때 흐른다. 이성으로 이겨내지 못할 때 불가항력적으로 흐른다. 그래서 떨어지지 않고 주르륵 내린다. 절박한 눈물은 짜지 않다. 맑다. 아들이 머리를 박박 밀고 육군훈련소 연병장에 섰을 때 그 맑은 눈물 맛을 알았다. 미각으로 느끼는 맛이 아니라 촉각으로 느끼는 눈물 맛, 단전에서부터 차오르는 묘한 비애였다. 눈물을 억누르고 있던 홍채의 괄약근이 풀리자, 몸 전체 50개의 조임근에서 어둠이 쏟아졌다. 눈물은 들켰을 때 모호해진다. 타인이 보면 청승맞고, 비밀스러움이 탄로 나면 슬픔이 희석된다. 하지만, 멀리서 ... [나재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