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살이 흡사 짐승 울음소리 같다고 해서 명량(鳴梁)이다. 성난 바다가 휘몰아치니 울돌목이라고도 한다. 명량은 공포의 대척점이자, 백성 눈물의 발원지다. 명량에 피바람이 불기 두 달 전, 원균은 칠천량에서 200척의 배를 잃었다. 때문에 왜(倭)의 바다는 패배의 냄새를...
▶80년 전만해도 전화통화를 하려면 교환수의 손을 꼭 거쳐야만 했다. 이러니 화재신고를 해도 소방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잿더미가 되곤 했다. 1935년 10월 자동화전화가 탄생하면서 교환은 114, 화재통지는 119번으로 정해졌다. 문제는 긴급전화번호가 너무 많아졌다는 ...
▶국민들은 다급할 때 무슨 '똥개' 부르듯 119부터 찾는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아닌데 집나간 강아지를 데려오라고 징징거린다. 현관문 따기, 처마 밑 말벌 쫓기, 멧돼지 잡기는 그냥 덤처럼 여긴다. 심지어 대통령 취임식 때는 의자 닦는 일까지 한다. 어떨 땐 보...
▶6월 12일 오전 9시, 농부는 평소처럼 자신의 매실밭에 올랐다. 야산 밑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계단식 밭(田) 아래쪽에는 고추를 심고, 위엔 수박씨를 뿌렸다.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 밭을 한 바퀴 둘러보던 그는 한쪽 풀숲이 꺾여 눕혀져 있음을 발견했다. 이상하다고 여...
▶내가 꽃이 아닌 이상, 남 앞에 서는 일은 초라하다. 더구나 나무토막처럼 물외하다면 더더욱 그렇다. 허세를 부려 봐도 오지랖 넓게 기를 펴지 못하는 것이다. 꽃은 보이기 위해 존재한다. 남이 보지 않으면 그건 꽃이 아니다. 때문에 꽃은 '화들짝' 피어 여행객의 ...
▶걷는 것은 문자(文字)보다 빨랐다. 먹는 것은 언어보다 빨랐다. 인류의 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남쪽원숭이)는 활엽수림이 줄어들고 지구대가 건조해지기 시작한 600만년 전, 나무에서 내려왔다. 나무에 매달려 네 발로 기던 원숭이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한 ...
▶위당 정인보와 육당 최남선은 절친한 친구였다. 하지만 최남선이 노골적으로 친일행각을 벌이자 정인보는 상복을 차려입고 육당의 집을 찾아가 '내 친구 육당이 죽었다'며 통곡했다. 정부수립 후 최남선이 반민특위에 걸리자 정인보는 증인으로 나서 육당을 변호했다. 그러나 ...
▶칙칙한 유곽에 들러 신고식을 치르고, 개처럼 끌려간 곳은 지옥이었다. “빨리 먹어, 빨리 입어, 빨리 뛰어. 빨리 싸. 빨리, 빨리, 빨리…. 박아, 뻗어, 기어, 벌려….” 문명사회의 짤막한 문맹어(文盲語)는 비겁했고 야비했다. 회식시켜준 뒤 지랄했고 칭찬한 뒤 빠...
▶동네에서 좀 논다 싶은 애들은 우멍거지가 채 여물지도 않은 나이부터 술을 입에 댔다. 술은 동시에 여자들에 대해서도 눈뜨게 했다. 자유분방한 색정광이 된 아이는 첫 관계를 하고 나서 훈장을 단 것 마냥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그 통정의 신(scene)들은 너무 세세했고...
▶(스토리Ⅰ)그는 어려서 학대를 받았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해 자수성가했다. 이후 아들이 생겼고 인생의 목표였던 최고급 스포츠카를 구입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차를 손질하러가다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 주변을 살펴봤다. 그런데 어린 아들이 스포츠카에 못으로 낙서를 하고 ...
▶조선 명종 때 백정 임꺽정은 임거정(林巨正), 임거질정(林居叱正)이라고도 불렸다. 거질정은 '거친 놈'의 한역이다. 당시엔 백정의 아버지를 마당개, 자식을 소근개라고 했다. 그의 형 이름은 가도치(加都致)다. '가당치도 않은 놈’이란 뜻이다. 임꺽정은 왜 도적이...
▶폭군 연산군은 매일 기생들과 향연을 가졌다. 심지어 여염집 아낙을 겁탈하거나 사대부의 첩, 양인의 아내와 딸, 자신의 친족과 상간하는 등 패륜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전국 팔도에 채홍사(採紅使), 채청사(採靑使)를 파견, 아름다운 처녀를 뽑았는데 운평, 계평, 채홍, ...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딱 5년 전(5월 23일 오전 5시21분), 노무현은 세상과 작별했다. 그는 유언처럼 화장됐다.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세워졌다. 남방식...
▶봉하마을을 찾았던 그날은 참 더웠다. 봄인데도 여름 같았다. 부는 바람도 여름이었다. 온몸의 숨구멍이 바람 속에서 열렸다. 비옥한 김해벌판에 스미는 햇빛의 냄새, 싹터 오르는 풋것의 단내가 좋았다. 어찌 이리 시골일까. 늘 보아왔고, 겪어왔는데 그 질박한 촌의 모습에...
▶1423년 봄, 조선의 고을에 가뭄이 닥치자 이재민과 아사자가 속출했다. 세종은 자책했다. "모든 게 내 책임이다. 내가 죽인 것이야. 이 조선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책임이다.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다. 그 어떤 변명도 필...
▶“비에 젖은 바다일지라도 부디 그들을 잊지 말자. 꽃다운 아이들, 그 절명의 푸르른 꿈들은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지만 그들을 기억하자. 먹먹한 가슴, 우리의 가슴도 잠겼다. 우리의 믿음도 잠겼다. 바다도, 어른도, 나라도 목 놓아 통곡한다.” 육친의 죽음은 하늘이 무너...
▶1912년 4월 잉글랜드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뉴욕으로 처녀항해에 나섰다. 이 배는 입때껏 물에 떴던 선박들 중 최대 규모였다. 그러나 나흘 만에 빙산과 충돌해 침몰했다. 고작 20대뿐인 구명보트를 타기 위해 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타이타닉 선장은 어린...
▶“웃어보게나. 거방지게 웃어보게나. 설사 웃을 기분이 아니더라도 잠시라도 웃어보게나. 혹시 사랑에 빠졌다면, 그냥 사랑에 빠진 것이네. 그걸 부정하고 손사래 치는 건 정말 비겁한 짓이야. 그러니 실의에 빠지거나 불빛을 꺼버리지 말고 삶속으로 깊숙이 들어가게나. 삶이 ...
▶미국의 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 부부가 농장을 방문했다. 영부인이 닭장 앞을 지나다가 수탉이 암탉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는 모습을 보고 "하루 몇 번이나 짝짓기를 하느냐"고 물었다. 농장주인은 대수롭지 않게 "열댓 번은 될 것"이...
▶가족(식구)이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동시에 가장 ‘고까운’ 사이다. 등 돌리면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 만나는 원거리의 대척점에 서있는 것이다. 가장 친하고, 가장 소중하다고 느끼지만, 막상 말과 행동은 결코 점잖지 않다. 당연히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막 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