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 양윤석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 양윤석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최근 우리 사회에서 불거진 학벌 비하 발언이나 여성 노동자에 대한 경멸적 언행에 놀랐다. "넌 학벌도 안 좋지?", "노동자가 국회의원 사모님이 됐다"는 말에는 여전히 출신, 이념, 직업, 학벌로 사람을 판단하는 시대착오적 위계 의식이 깃들어 있다. 우리 민낯이다.

산업화 이전, 노동은 창조이자 예술이었다. 목수는 나무를 다듬고, 재단사는 천을 엮어 옷을 완성했다. 결과물은 자율성과 창의성으로 빚어졌다. 그러나 산업화는 인간을 반복 작업에 가두고, 전체를 잃은 채 ‘부분’만 수행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단편적 기능에 특화된 새로운 엘리트가 등장했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끝없는 반복 속 삶의 의미를 묻는 인간의 고통"을 이야기하며, 인간은 반복 속 축적된 단편 지식을 권력처럼 휘두르며 타인을 평가하고 우쭐한다고 했다. 이것이 현대판 엘리트의 본질이다.

하버마스는 이를 ‘도구적 합리성’이라 불렀다. 인간을 존재가 아닌 성과와 효율로 평가한다. 푸코는 ‘규율 권력’을 더해 우리는 외부 감시 없이 스스로를 감시하며 살아간다고 했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권력이 내면화된 결과다. 베버는 권위가 인간다움이 아닌 자격증과 지위에서 나온다고 봤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이틀을 좇는다. 며칠 전 병동에서 한 환자가 신규 간호사에게 "이 정도도 못 하느냐"고 질책하며 자신은 서울 모 대학병원 출신이라며 우월감을 드러냈다. 단편 지식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모습은 시지프적 인간의 축소판이다.

이제 진짜 기계가 나타났다. 반복을 견뎌온 인간은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물 수 없다. 인공지능은 지식을 엘리트 특권에서 모두의 도구로 바꿨다. 법률, 의학, 금융도 누구나 쉽게 다루는 시대다. 지식의 벽은 허물어졌고, 단편 정보에 기대 우세를 부리던 ‘코끼리 엘리트’는 이제 풍자의 대상이다. "넌 학벌도 안 좋지?", "노동자가 국회의원 사모님이 됐네" 같은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오히려 조롱받는 이유다.

새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타이틀이 아닌 통합적 사고력과 공감 능력, 타인을 이해하는 태도다. 진정한 지성은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연결되느냐에 달렸다. 하이데거는 "기술이 인간을 도구화할 때 우리는 존재의 망각에 빠진다"고 경고했다. 우리는 그 망각에서 깨어나야 한다.

오늘도 진료실에서 GPT를 켜고 환자와 대화한다. 내일은 AI 비서를 옆에 두고 진료할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단순 기능 수행자가 아닌, 전체를 아우르는 의료 장인이 된다. 하찮은 지식으로 우쭐했던 과거는 저물고 있다. 그 자리에 지혜와 존엄, 인간 존중의 언어가 깃들길 바란다. 그들이 진정한 신(新) 엘리트이자 진실한 우쭐함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