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청주시 1인1책 펴내기 강사

천방지축 하룻강아지다. 애교인지 앙탈인지 꼬리를 살랑대며 거실을 비호같이 몇 바퀴 내달리는 것으로 아침이 왔음을 알린다. 말 수 없던 노부부의 고요하던 아침이 첫새벽부터 수선스러워지고 웃음소리가 나는 건 순전히 이 작은 애물단지가 등장한 날부터이다.

작년 여름, 십 수 연간을 한 울타리에서 살던 애완견 한 마리를 무지개다리로 건네 보내며 이별이 너무 쓰린 상처가 되어 다시는 생명 있는 것들을 품지 않으리라 했다. 그런데 그 녀석을 꼭 닮은 애물단지가 또 들어왔다. 조막 둥이 만한 이 악동은 나를 지에미로 아는지 눈만 뜨면 하루 종일 발끝에서 떨어지지 않고 따라 다닌다.

여린 생명의 안쓰러운 처지를 토로하며 며칠만 맡아달라는 딸의 간곡한 부탁에 찜찜했지만 그러마했다. 열흘쯤 지났을 때 딸아이의 계략에 꼼짝없이 내가 넘어간 시실을 알고 허탈해 웃었다. 정들기 전에 다른 주인을 물색하라고 엄포도 주었지만 마음은 이미 귀여운 악동의 일거수일투족에 빠져들고 있었다. 자꾸 밀쳐내는 나의 행동에도 꽁지를 흔들며 달려드는 녀석의 단춧구멍만한 순수한 눈망울이 꽁꽁 동여맸던 애증의 치마폭을 맥없이 펼치게 하는 걸 어쩌란 말인가. 울안으로 들어온 또 한 생명과 드디어 애오동주가 시작됐다.

돌아보니 세 아이들의 양육과 함께 두 마리의 애견을 키워 무지개다리를 건네 보낸 세월이 30여년이다. 강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우리 집 역사를 함께 해왔으니 그들은 가족이자 식구였다. 말 못하는 동물이지만 집안 내 감정의 기류조차 공유한 긴 세월이니 내 식견으로 동물이라고 야박하게 선을 그을 수가 없다. 손바닥 안으로 움켜잡기도 어설펐던 작은 생명체를 십 수 년씩 키우고 이별을 할 적마다 다시는 새로운 인연을 맺지 않으려했건만 또 연을 이었으니 무슨 팔자인지 모르겠다.

세상살이에서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부대끼며 살아온 숱한 세월 속에는 사람들과 추억도, 아린 상처도 많다. 그러나 돌아보니 애완견과 함께한 시간들은 불편보다는 정서적 위안이 됐던 적이 참 많았다. 동분서주하는 부모를 대신해 하교하는 어린 딸들을 먼저 맞이 해준 것도 강아지였다. 빈집이라는 허전함을 강아지를 품에 안으며 달랠 수 있었다는 말을 성장한 딸들에게 들을 적마다 무한 불변의 충심으로 늘 우리 가족 곁에 있던 그 녀석들에게 감사했다.

눈이 작아 단추라 이름 지은 애물단지 이 녀석과의 동주가 필연의 연줄이라면 우리 노부부와 오랫동안 건강하게 함께해주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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