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균 ETRI 기술창업실 책임연구원

최근 정부출연연구원을 포함한 과학기술계,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중소·벤처기업 모두 여러 사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1월 발표한 최근 5년간 벤처투자 현황을 보면, 2021년 7조 6802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던 투자금은 지난해 6조 7640억원으로 줄었다. 올 상반기 벤처 투자액도 4조 4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견줘 42% 감소한 수준이라고 한다.

최근 이러한 투자 혹한기로 인해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주요 투자자인 벤처캐피탈(VC)업계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얘기하자면, 첫 번째 사례, 잘나가는 A 바이오기업은 작년 초 시리즈 B로 1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기업가치 600억원 인정)했지만, 최근 추가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작년 대비 절반인 300억원으로 인정받자, 높은 배수로 투자한 기존 투자자와 저 배수로 투자하려는 신규 투자자간의 불협화음으로 인해 대표이사 입장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두 번째 사례, 다소나마 자금 여력이 있는 ICT부품 회사인 B사는 최근 경기 불확실성과 투자업계의 냉각기로 인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고자 VC를 만났는데, 아무리 유망한 기업일지라도 회사내 여유 운영자금이 최소 1년치 이상 보유하지 않았다면 투자는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세 번째 사례, 매출 80억원 규모, 종업원 20여명으로 운영하는 센서 관련 기술 벤처기업인 C사는 최근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10명 정도 인력으로 운영하겠다고 했다. 중소·벤처기업의 R&D 예산도 어렵다고 하니, 대표이사 입장에서는 정부 R&D 뿐만 아니라 고객사 매출도 대폭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미리 준비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네 번째 사례, 농산업 혁신을 주도할 애그테크(AgTech) 스타트업인 D사는 신규 투자유치에 20억원을 추가로 투자받기로 했지만, 투자유치가 전면 보류되는 바람에 기존 직원 5명이 중도 퇴사했고, 부지 매입 역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 사업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지 난감해하고 있다.

다섯 번째 사례, 주식시장도 안 좋고 투자금 회수도 어렵다 보니, VC 입장에서 펀드레이징(펀드 자금 모집)이 너무 어렵다고 한다. 특히 꺾이지 않는 고금리, 장시간의 투자기간, 낮은 회수 가능성 등으로 인해 투자 네트워크가 다소 부족한 중소 VC의 경우, LP(유한책임투자자; 펀드에 자금을 출자하는 출자자)모집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에 올 하반기 들어서 개점휴업한 VC들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첨단기술과 신시장을 이끌고 잘나가던 스타트업들이 하나, 둘씩 어렵게 됐다. 본격적인 스타트업이 어려운 시기는 내년이라는 소리가 심상치 않게 돌고 있다. 불황은 어느 시대에나 다 있었다.

하지만 중소·벤처기업 입장에서 점진적 불황이었으면 미리 대비를 했겠지만, 갑작스러움으로 중소·벤처기업 뿐만 아니라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 예비창업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다 보니, 국가 성장동력 자체가 끊기지 않을까 걱정이다. 삼성전자가 과거에도 반도체가 불황일수록 과감한 투자를 지속하는 ‘초격차’ 전략을 구사하여 오늘의 삼성전자를 만들었듯이 정부 역시 불황일수록 과감한 스타트업 투자를 단행하는 것이 진정한 ‘초격차’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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