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청주시 1인1책 펴내기 강사

길섶에 가을꽃이 피었다. 지독히도 더웠던 여름날을 지나 저리도 곱게 피었다. 그 억센 장맛비도 견디고, 불덩이 같던 땡볕도 견디더니 처서가 지나자 하나둘 꽃을 피워내기 시작한다. 각양각색으로 빛을 발하며 어우러진 모양새도 전혀 요란스럽거나 천박하지 않다.

내가 지도하고 있는 1인 1책 반 교실에서 4권의 자서전이 출간됐다. 황혼의 뒤안길에서 걸어온 자신들의 인생을 글로 사려서 엮었다.

학기 초에 자서전을 집필하자는 계획안을 내놓았을 때 그분들의 얼굴에선 갖가지 회한의 그림자들이 일렁였다. 그분들의 표정은 만 가지 생각에 잠기는 듯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별것도 아닌 인생인데 심연 깊숙이 묻어두었던 아픈 상처들까지 들추어내는 것 또한 두렵다 했다. 내가 지도하는 곳은 노인복지관인지라 수강생 모두가 역사적 풍파를 몸소 겪으며 살아온 연배들이니 그 마음이 이해됐다. 그분들의 입버릇처럼 하시던 별것도 아닌 인생을 어찌 책으로까지 만들겠냐는 말씀은 겸손이 아니고 진심이었기에 더 붙잡고 설득했다.

자서전을 집필하며 유년 시절과 중년, 그리고 황혼의 색이 완연하게 깃든 지금, 해탈같이 사려놓은 그분들의 삶은 참 신선하게 내 가슴을 흔들었다. 기억의 저장고도 녹이 슬어 어설픈 글쓰기라 했지만, 그 어설픔이 더 진솔했고 울림이 컸다.

인디언 속담을 보면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그 마을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눅진 삶을 추억하여 써 내려간 은빛 인생 이야기는 어느 도서관에 가득한 역사책들과 견주어본들 그 진가를 비길 수가 있을까. 혹여 투박하다 하여 오려내지도 않았고 덧칠하지도 않았다. 퇴색된 삶을 그대로 그려냈고 화려했던 순간들 또한 호들갑스럽게 치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분들의 자서전은 더 심금을 울린다.

들꽃은 갖가지 색으로 아무렇게나 피어난 듯하지만, 사계의 인고가 꽃으로 피어난 것이리라.

별것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들추고 사려서 엮은 자서전은 황혼에 깃든 인생을 꽃 빛으로 물들이고 별것으로 승화시킨 것이기에 더욱 존귀하다.

노년기의 삶의 철학과 가을꽃 같은 그윽한 감성이 어우러진 자서전은 그분들의 여생과 자손들의 삶의 이정표가 되어 등불처럼 영원히 남아있으리라.

글쓰기 고개가 너무 가파르다던 서원노인복지관 일 책 반 수강생님께 서녘 하늘 황혼빛같이 그윽하고 고고한 은빛 인생이 더욱 빛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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