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다산행정문화연구소장·전 청주시 기획행정실장

어린 백성이 니르고져 핧배 이셔도…. 세종대왕이 밝힌 훈민정음의 창제 이유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지배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자를 배우지 못해 자기의 뜻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서였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말 자체도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런 세종의 노력은 당시 ‘한자’라는 어려운 정보 전달수단을 독점하던 기득권층의 반발을 가져 왔다. 집현전 부제학이었던 최만리의 훈민정음 반대 상소문을 보면 중국에 대한 과도한 사대 정신과 백성들이 쉽게 정보를 접하고 의견을 내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다. 역사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식정보의 확산은 정보를 독점하던 기득권층의 강한 반발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 반발이 성공하지 못한 것 또한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16세기에서 18세기 동안 세계사를 뒤흔든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이 금속활자라는 위대한 발명과 맞물리면서 그동안 정보를 독점하고 왜곡했던 왕권과 신권을 해체했다. 더 나아가 금속활자 인쇄술은 산업혁명의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하면서 인류 문명을 급속하게 발전시키는 기틀이 되었다. 그래서 인쇄술을 세계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는 것이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윌버 슈람은 인류 문명의 발달과정을 정보 전달수단인 말, 문자, 인쇄술 그리고 컴퓨터를 가지고 4단계로 구분하였다.

말의 발달이 인간을 동물과 구분 짓게 했으며, 문자 발명으로 정보의 보관이 가능하게 됐고, 인쇄술의 발명으로 지식과 정보를 대량으로 생산해 대중들이 공유하게 됐다. 그리고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명으로 세계 어디서나 같은 시간에 정보를 접하게 됨으로써 정보 향유의 공간적, 시간적 제약이 사라지게 됐다. 이렇듯 정보 전달수단은 인류의 역사를 바꾸고 획기적으로 문명을 발달시키는 기반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정보 전달수단을 역사 속에서 살펴보자.

2단계 문자적 차원의 훈민정음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만든 연도와 만든 사람은 물론이고 창제원리가 알려진 문자다. 또한, 유명한 세계의 언어학자, 역사학자들에게서 ‘최고의 알파벳’으로 인정받고 있다.

3단계 기술적 차원의 정보혁명 수단인 금속활자 인쇄술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용하였다. 그 사실을 청주 흥덕사에서 만든 세계기록유산 직지가 웅변하고 있다.

4단계인 컴퓨터와 관련한 인터넷, 반도체, 스마트폰 등 IT산업에서도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즉, 우리는 세계사 속에 빛나는 단계별 중요한 정보 전달수단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지식정보 시대라 일컫는 21세기에 대한민국이 뜨고 있는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피 속에 우수한 정보 DNA가 면면히 이어져 오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청주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마무리하면서 질환을 치료하셨던 초정약수와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가 탄생한 곳이며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중요 생산기지가 있는 곳이다. 한글날을 앞두고 청주에서 대한민국 지식정보 혁명의 역사적 현장을 찾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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