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득 충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당신의 한 표로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던지는 한 표가 ‘세상을 바꾸는 한 표’라고도 말한다.
우리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고 조심스레 접어 투표함에 집어넣는 외견상 아주 단순한 행위가 이토록 큰 의미가 있다고들 한다.
선거가 임박하면 투표를 독려하고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이끄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하는 투표라는 행동이 겉보기엔 작아 보이더라도 큰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정말 투표는 세상을, 정치를 바꿀 수 있을까. 그리고 선거는 중요할까.
분명 선거는 민주정을 기능하게 하는 여러 제도 중 핵심이다.
누가 국가공동체를 통치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책무를 지게 될 것인지는 선거를 통해 결정된다.
선거에서 통치를 수행한 정치세력에게는 시민의 평가가 가해진다.
통치의 과정과 성과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면 재집권이라는 보상을, 그렇지 않을 때는 야당으로 밀려나는 처벌을 받는다.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다양한 시각에서 제기되고 그에 대응하는 통치대안이 공약이란 형태로 유권자들 앞에 선보인다.
민주정의 핵심적 가치인 대표성과 책임성이 선거를 통해 구현된다.
그러니 선거는 민주정을 민주정답게 만들어주는 민주정의 핵심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선거가 정치의 모든 것은 아니다. 정치의 본질은 대표자를 선출하는 선거가 아니라 선거 이후에 이루어지는 통치에 있다.
홀로 생존할 수도 없고 혼자서는 살아가는 보람도, 가슴 벅찬 순간도 느낄 수 없는 인간이기에 서로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충돌할 수밖에 없음에도 공동체를 이루고 살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와 가치관이 충돌하는 수많은 개체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기 위해 집단적인 의사결정은 필수적이다.
때로는 인간의 공동체가 중요한 시대적 과제에 직면하기도 한다.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체적 결단을 이끌어내고 거대한 협력을 가능케해야 한다.
이 집단적 의사결정과 협력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정치의 본질이다.
정치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활발할 때는 선거를 앞두고 있는 기간이지만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투표함을 열어 표를 헤아리고 당선자를 발표하는 순간이 아니다. 선거가 끝난 이후의 정치가 중요하다.
선거는 정치의 끝이 아니라 시작의 끝에 불과한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한 번의 투표가 아니라 시민들의 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참여다.
내일 우리가 확인하게 될 선거 결과에 실망한 시민들은 선거 이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남아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선거 결과에 환호하는 시민들은 자신과 견해가 다른 시민들이 여전히 아주 많고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공동체를 미래로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