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수필가

산능선 풍경이 단출하다. 나무는 마음의 번뇌를 털어버린 듯 풍성했던 잎을 떨구고 초연히 산을 지키고 있다. 헐거워진 나뭇가지 사이로 파리한 하늘빛이 선명하다. 무심코 눈에 든 능선의 풍경이다. 나무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마주한다. 나무는 저 높은 곳에 단출한 모습으로 서서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나. 아니면, 춥고 외로운 시간을 인내하며 견뎌내는 것일까. 문득 그 속내가 궁금하다.

능선의 느낌은 오뉴월과 사뭇 다르다. 나무가 모두 잎을 떨군 것은 아니다. 침엽수인 소나무는 푸른빛으로 겨울 산을 보듬고 있다. 능선의 나뭇가지를 바라보다 오랫동안 가지 못한 고향 산 풍경을 떠올린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산촌에는 밭일이 시작되는 초봄까지 겨우내 쓸 땔감 준비로 분주하다. 마른 가지와 썩은 나무둥치는 아이들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땔감이다. 찬란한 가을날을 보낸 뒤 바닥에 수북이 쌓인 낙엽은 불쏘시개로 더없이 좋다. 하여 고향 뒷동산은 어른과 아이들로 방학내 북적인다. 갈퀴로 긁어 자루에 담아온 낙엽을 태우다 머리까지 태우는 웃지 못할 상황도 종종 일어난다.

뒷산에 올라 나무하던 일도 놀이로 즐겼던 시절이다. 내 키보다 큰 갈퀴를 들고 의기양양 오빠를 따랐지만, 금세 포기하곤 하였다. 나뭇가지에 툭하면, 걸려 넘어지고 미끄러져 울음보를 터트리곤 했다. 오빠는 동생 때문에 친구들에 뒤처지곤 했으니 내가 무척이나 야속했으리라. 마을 뒷산은 겨우내 사람들이 오르내린 덕분에 봄이 되면 검불 하나 없이 말끔해졌다. 산능선에 초록 새싹이 돋으면 단박에 눈에 드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나무는 겨우내 비우는 작업에 몰두한다. 봄이 오고 새싹이 오르면, 산은 다시 채우는 작업에 몰두하리라. 요즘은 봄 산의 풍경이 산뜻하지만은 않다. 누구도 나뭇가지나 낙엽 등을 거들떠보지 않는 탓으로 산천은 거무죽죽한 검불들로 뒤덮인다. 새싹이 오른들 검불에 묻히고 가려 보이지 않는다. 꽃이 핀들 그 형편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고향 말끔한 산천에 분홍빛 진달래와 노란 산수유꽃이 풍성하던 봄 산, 그 풍경이 사뭇 그립다.

비워야만 다시 채울 수 있으리라. 우리네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채움보다 비움의 과정이 중요하다. 비움 없이 채움만 거듭한다면, 용량은 차고 넘쳐 그 품새가 엉망이다. 나무가 자신의 잎을 떨구어 비우듯 우리네 마음에 깃든 불편한 감정도 비우고 덜어내야 한다. 한파가 매섭다고 옷 섬 여미던 때가 며칠 전만 같은데 오늘이 벌써 입춘이다. 다시 산 능선은 푸른 나무와 꽃들로 서서히 채워지리라. 능선은 비움의 계절을 지나 초록의 봄을 준비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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