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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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4월 잉글랜드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가 뉴욕으로 처녀항해에 나섰다. 이 배는 입때껏 물에 떴던 선박들 중 최대 규모였다.

그러나 나흘 만에 빙산과 충돌해 침몰했다. 고작 20대뿐인 구명보트를 타기 위해 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타이타닉 선장은 어린이, 여자, 남자 순으로 탈출하게 만들고 자신은 배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다음날 아침 인근을 지나가던 카르파티아호가 705명의 생존자를 구했지만 1517명은 북대서양 차가운 얼음물속에 수장됐다. 선장이 남긴 마지막 말은 “영국인답게 행동하라”였다.

▶1967년 1월 여수에서 부산으로 가던 한일호 승객 93명은 충남함(구축함)에 부딪쳐 숨졌다. 같은 해 명태잡이 어선들의 월경을 막기 위해 초계중이던 당포함은 북한의 공격을 받아 39명이 산화했다.

1970년 12월 승객과 감귤을 싣고 제주를 떠난 남영호도 무리한 과적, 항해 부주의로 침몰해 326명이 사망했다. 1974년 2월엔 해군 예인정 침몰사고로 159명이 순직했고, 1993년 10월엔 서해훼리호가 부안군 위도에서 침몰해 29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배의 선장은 끝까지 승객을 구하려다가 숨졌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한 것은 1987년 12월 필리핀 여객선 침몰사고였는데 4386명이 희생됐다. 2011년 인도양 전복사고 땐 2966명이, 1948년 중국 내전 당시엔 피란민 증기선이 폭발해 3920명이 숨졌다.

▶왜 세월호 선장은 도망을 쳤을까. 맹수처럼 사납다는 맹골수도(孟骨水道)의 물살이 두려웠을까. 아니면 수십 년 넘게 뱃일을 한 베테랑 어부도, 해군 특수대원도, 잠수의 달인 '머구리'들도 두려워한다는 그 수맥(水脈)이 두려웠을까.

물론 진도 맹골도는 1년에 물살이 2800번 바뀐다는 악명 높은 곳이다. 이순신 장군이 명랑대첩을 이끈 ‘울돌목’ 다음으로 거칠다. 때문에 최근 10년간 58차례의 크고 작은 사고가 났다. 그래도 줄행랑치는 건 비겁했다. 2012년 이탈리아에서 좌초한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의 선장은 승객 300여명을 버리고 도망친 죄로 2697년형을 선고받아 옥살이 중이다.

▶아, 바닷물이 차오를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 서서히 얼음장처럼 변해가는 체온을 더듬으며 얼마나 두려웠을까.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그 짐승 같은 어둠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는 비명이 터질 때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리고 까닭도 모른 채 죽어가며 세상을 얼마나 원망했을까. 물경 300명이다. 잘못했다, 미안하다. 바다 위 꽃잎처럼 흩어진 가여운 이름들에게 한없이 부끄럽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목 놓아 운다. 사고 해역엔 찬바람이 불고 있다는데 지금 올려다보는 하늘은 왜 이리도 화창한가.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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