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 관련문서가 1980년대 이후 세 차례나 소각된 사실은 비록 그것이 관련법에 의한 통상적인 행정업무라 하더라도 역사보존, 기록관리에 둔감한 행정시스템의 경직성을 보여준다. 일제 당시 독립운동 사실을 규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료임에도 읍·면·동사무소에서 보관하다가 관련 규정에 의해 1983, 1985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폐기처분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록문화의 부재 현상을 재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일제시 수형기록부에 등재된 내용 전부가 항일독립활동에 관련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중에는 독립운동, 사상범, 양심수 이외에 잡범, 파렴치범, 일반범죄 등도 포함됐을 것이므로 모두 보관할 필요는 없을 터이다. 더구나 현행법상 형이 실효된 경우 관련 범죄기록을 담은 본적지 행정관청 전과기록을 폐기토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런 조치는 통상적인 행정업무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수립 60년이 가까운 이즈음 엄청나게 발전한 행정서비스 아래서 항일운동을 조명할 수 있는 귀중한 사료(史料)가 옥석 구분 없이 일괄 소각, 폐기되고 있다는 것은 국가 기록관리 체계상 허점을 그대로 말해준다. 연기군의 경우 관련 문서 전체가 소실됐고 극히 일부 읍·면에만 아직 남아 있다고 하니 이제부터라도 엄밀한 검증작업을 거쳐 민족정기를 선양하는 소중한 기록이 더 이상 멸실되지 않도록 각별한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다.

이미 소각 처리된 수만 건의 문서 중 그동안 인정받지 못한 독립유공 근거자료가 적지 않을 것임을 추정할 때 그간 능률 일변도, 획일적 규정준수, 그리고 가시적 실적 제고라는 전근대적 행정드라이브의 허술함과 문제점이 드러난다. 그렇지 않아도 국가유공자인정 신청의 경우 당국은 전적으로 신청 당사자에게 관련 근거자료를 찾아오라는 등 방만하고 무성의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나마 현존하는 자료마저 규정준수라는 명분아래 가차없이 폐기되는 현실에서 독립, 참전, 민주유공 등 국가보훈 대상자들에 대한 합당한 예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은 명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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