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박진환 문화과학부 차장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대한민국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 사건이 최근에 일어났다.

바로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왜곡 사태다.

아베 신조 총리를 필두로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 등 일본 정치인들에 의해 시작된 역사왜곡과 망언 퍼레이드는 상처받은 한국인들의 마음에 말뚝을 박으며, 반일감정에 기름을 붓고 있다. 현재 이 같은 적대감은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경제적 수준, 나이, 성별, 지역 등 한국 사회의 만연했던 계층 간 분열을 일시에 잠재웠다. 이는 역설적이지만 일본 정치인들이 한국 사회를 하나로 통합시켰다는 평까지 나오고 있다는 이유다.

그러나 이 사회적 통합이 또 다시 분열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원인의 발단은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추징 시효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야당과 진보진영이 제의한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이 6월 임시국회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불법적으로 정치자금을 조성한 혐의가 유죄로 확정되면서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 받았지만 "전 재산은 29만원 밖에 없다"며 1672억원을 미납한 상태다.

그동안 그와 그 가족들의 호화로운 생활과 일탈은 매스컴 등을 통해 계속 보도됐지만 전 전 대통령 명의의 재산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역대 정권은 수수방관했고, 추징금 공소시효마저도 오는 10월이면 끝난다.

그러던 와중에 최근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 씨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역외 탈세했다'는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정국이 또 다시 소용돌이 치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과 진보 측 인사들은 '전·현직 대통령이 취득한 불법재산·혼합재산에 대해 가족 등 범인 이외의 자에게도 추징할 수 있도록 하고, 추징 시효를 현재 3년에서 10년으로 대폭 늘리는' 등의 내용을 담은 '공무원 범죄 몰수 특례법', '범죄수익은닉 규제 및 처벌법' 등 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다수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을 포함한 보수 측은 "현재 국회에 제출된 다수의 법안들이 헌법에 위배되며,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여기에 최근 일부 종합편성채널(종편)이 '5·18 북한군 개입설'을 방송하면서 다시 한국 사회를 극한 이분법적 대립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결국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으로 대응하면서도 정작 자국의 역사왜곡과 독재자의 만행에 대해서는 아직도 관용과 이해가 남아있는 셈이다.

전 전 대통령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권력을 위해 자국민에게 총칼을 휘두른 희대의 독재자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필두로 한 신군부는 1980년 계엄을 반대하는 시민과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를 '북한의 조종에 의해 선동되고 있다'는 이유로 이들과 유력 정치인들을 체포·구금하고, 고문·살해했다.

시간이 지나 다시 민주화의 길을 걷게 됐지만 아직도 신군부에 의해 당시 죽거나 행방불명된 시민들의 정확한 숫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3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군부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인사들에 대한 단죄 역시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에는 온 국민이 하나로 뭉쳐 대응하고 있지만 자국민이 자국에 대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대부분 침묵하고 있는 것이 2013년 6월 한국의 역사다.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의 역사부터 바로 세워야 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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