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건설 이야기(5) 창사 11년 자체사업 첫 발

▲ 20년 넘게 대전지역의 명물로 자리를 지켜온 중앙로 지하상가는 계룡건설이 민간자본을 투입해 건설했다. 중앙로 지하상가가 개통되면서 대전은 전국 3번째로 지하상가를 가진 도시가 될 수 있었다. 사진은 1980년 공사가 진행되던 당시의 중앙로 모습.
계룡건설에 1980년은 기업 성장기 중 의미 있는 획을 긋는 한 해로 평가된다.

창사 11주년을 맞는 해이면서 최초로 공사수주액 100억원을 돌파했을 뿐 아니라 대전·충남지역 도급 순위 1위 고지를 처음으로 밟은 해이기 때문이다.

창사 당시와 비교할 때 사세가 무려 20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이렇듯 계룡건설은 사세 확장을 거듭했지만 당시 국가의 경제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70년대 후반에 오일 쇼크와 국제금융제도 불안정이 겹치며 최악의 위기를 맞은 한국경제는 80년도에 유례없는 -5.2%의 성장률을 기록하게 된다.

국민들은 불안감을 느끼며 앞다퉈 달러 환전을 하며 경제 위축을 부채질했고, 소비는 극도로 위축돼 전국의 기업들도 저마다 몸을 낮췄다.

이 시기에 이인구 회장은 손수익 충남지사를 방문해 지역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는 깜짝 제안을 했다.

"지역 경기를 부양할 시책이 마련돼야 합니다. 계룡건설이 대전역에서 목척교까지 270m 구간에 폭 17m 규모로 지하도 기능을 겸한 지하상가를 건설하겠습니다. 대형 공사가 벌어져야 하도급 업체도 일거리를 찾고 자재업자들도 숨통이 트일 것 아닙니까. 노무자들 일거리도 생길 것이고요."

없는 공사도 발주해 일거리를 만들어 주어야 할 처지에 있던 손 지사는 이 회장의 조건을 흔쾌히 수락했고, 이로 인해 대전은 전국 3번째로 지하상가가 있는 도시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손 지사는 공사기간 중 빚어질 일대의 교통란을 염려했고 이에 대해 이 회장은 공기를 최대한 단축시켜 6개월 이내에 교통소통을 정상화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이 공사는 착수 4개월 만에 복개가 마무리 돼 정상소통이 이루어졌고, 이후 6개월 만에 전 공정이 매듭지어졌다.

270m에 달하는 지하도 조성공사가 10개월여 만에 끝나는 대기록이 달성된 것이다.

당시 지하상가를 조성하는 조건은 209개 점포(783평)를 조성해 20년간 계룡건설이 임대사업을 벌인 후 대전시에 기부채납하는 것이었다.

▲ 중앙로 지하상가가 개통된 1981년은 계룡건설이 서울지사를 개점해 본격적으로 전국기업을 향한 첫발을 내디딘 해이기도 하다.
지하상가 조성 공사에 소요되는 사업비는 총 32억4000만원.

각 점포의 임대료는 1250만원으로 임차인은 별도의 월세 없이 20년 후에 보증금을 환수하는 방식이었다.

호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분양사업은 순탄하지 않았다.

계약 만료 시점 이전에 임대료를 인상하는 횡포를 부릴 수 있다는 생각과 계룡건설이 20년 동안 무난히 존재할 수 있겠느냐는 염려를 하며 입점을 결정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최초 개점 당시까지의 분양률은 65% 수준에 머물렀다.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 계룡건설은 예상치 못한 낮은 분양률로 사업 초기 자금압박을 받기도 했지만 미분양 점포는 하나둘씩 소진됐고, 2년 후에야 비로소 모든 상가는 임차인을 찾았다.

보증금 환불은 지난 2000년부터 시작됐고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올해 2004년은 지하상가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을 환불해 주는 일이 마무리되는 해이다.

창사 10년을 갓 넘긴 지역 업체가 벌이기에는 버거운 공사 규모였지만 계룡은 거침없이 사업에 착수했다.

10년간 관에서 발주하는 공사를 수주하는 형태로 운영된 계룡건설은 첫 자체사업의 단추를 이렇게 꿴 것이다.

"공사를 처음 시작할 때의 생각으로는 공도(公道)의 지하에 축조한 건축물에 대해 소유권 등기를 한다면 훗날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 거야. 그래서 등기분양이 아닌 임대를 택했지. 그보다 20년 후에는 대전시내 중심가의 교통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만일의 경우 이 지하상가를 지하차도로 구조 변경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 시에 기부채납하면 자연스럽게 활용방안을 찾을 것이라고 판단한 거야. 지하철이 생겨나면서 예측은 빗나갔지만 아직도 그 가능성은 충분하지."

이 회장은 지하상가를 교통량 폭주에 대비해 지하차도로 개조해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공사에 착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입점자들이 불안해하는 것을 불식시키는 일이 어렵더군. 임대료를 기습 인상하는 것은 아닌지, 20년 후에 정말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불안해하는 거야. 그래서 20년 후에 모든 보증금을 환불해 주고 소유권을 대전시에 넘기겠다는 내용을 담아 보험에 가입했지. 내가 직접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사업 설명회도 벌였어. 그 때부터 조금씩 믿어주더군."

이 회장은 처음으로 벌인 자체 사업을 진행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음을 술회했다.

지하상가 공사는 대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대규모 공사가 시작되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을 수 있었고, 관련 분야 많은 기업들 역시 활로를 찾을 수 있었다.

조성된 지 20년 동안 중앙로 지하상가는 교통소통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키고 보행자들의 안전한 통행을 가능하게 했다.

또 유사시 대피시설로도 활용되는 한편 시민들에게는 대전의 자랑거리가 됐다.

그러나 대전시민들은 지하상가를 얻는 대신 오랫동안 대전의 명물이었던 목척교를 잃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중앙로 지하상가 조성 공사는 계룡건설에도 많은 변화를 안겨다 주는 사건이 됐다.

소극적 수주공사에만 치중하던 계룡건설은 지하상가 건설 참여로 자체 사업에 눈뜨기 시작했고, 사세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게 됐다.

이때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가 소요돼 계룡건설은 자회사로 동성콘크리트를 설립하는 계기를 맞기도 했다.

계룡건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

지방 업체가 그 막대한 공사를 스스로의 힘으로 거뜬히 해내는 것을 지켜보고는 너나 없이 믿음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지하상가가 처음 개통되던 날이 생각나는군. 정말 엄청난 인파가 지하상가를 구경하기 위해 대전 도심으로 몰려들었지. 환하게 불이 밝혀진 지하상가를 거닐면서 기뻐하던 시민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니까."

이인구 회장은 중앙로 지하상가 개통일의 벅찬 감동을 떠올리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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