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전 지하상가·공원 가보니
중앙로지하상가 ‘삼삼오오’ 모인 어르신들
“경로당 이미 친한 사람들 많아 끼기 어려워”
공원, 운동기구 적어 장시간 머물기엔 ‘한계’
90대 이 모씨 “젊은층 모이면 눈치보이기도”

21일 대전 중구 중앙로지하상가에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사진 =조정민기자
21일 대전 중구 중앙로지하상가에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사진 =조정민기자

[충청투데이 조정민 기자] "날도 풀리고 꽃도 피기 시작해서 바깥바람 쐬려고 나왔는데 막상 갈데가 없어 다시 지하로 내려오게 되네. 나이 들고 허송세월이지 뭐."

21일 대전 중구 중앙로지하상가에서 만난 김 모(72) 씨는 "산책 겸 나왔다가 딱히 갈 곳이 없어 지하상가에 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지하상가에는 김 모씨 외에도 삼삼오오 모인 노인들로 가득했다.

혼자 신문을 쌓아두고 보거나 그저 멍하니 앉아있는 노인들로 벤치가 가득 찼다.

노인들을 위한 사회활동 공간으로 경로당이나 노인복지관, 노인회관 등도 곳곳 마련돼 있지만 이들은 지하상가가 더 편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하상가에서 만난 박 모(66) 씨는 "경로당까지 가기도 힘들고 가서도 집에서처럼 앉거나 누워만있다 올 게 뻔하니 햇빛이라도 받으려고 나오는 것"이라며 "조금 걷다 다리가 아파지거나 바람 불어 추워지면 지하상가로 내려온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어르신 역시 "경로당에는 이미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경우가 많아 그 사이에 끼기 어려울 때가 많다. 지하상가는 혼자 온 또래 친구를 소소하게 사귀는 맛이 있어 자주 오게 된다"고 덧붙였다.

겨우내 집안에만 있던 노인들이 봄철을 맞아 밖으로 나오고 있지만 한정적인 여건에 또 다시 지하로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공원은 노인들에게 좋은 산책코스지만 딱 그 뿐이다. 적은 종류의 운동기구, 드물게 설치된 정자는 노인이 장시간 머무르며 시간을 보내기엔 부족한 환경이다. 기자는 지하상가에 이어 대전 동구 판암동 양지근린공원도 찾아가 봤다. 봄햇살이 내리 쬐는 오후 산책을 나온 노인들이 몇몇 보였다.

공원을 한 두 바퀴 돌던 한 노인은 운동기구에 흥미를 보였고, 다른 한 켠에선 음악을 틀어두고 풍경을 감상하는 노인도 있었다.

김 모(72) 씨는 "가벼운 운동이 하고 싶을 땐 공원 운동기구를 쓰지만 종류도 적고 몇 개뿐이라 오전엔 경쟁이 있을 정도"라며 "공원이 넓으니 게이트볼 같은 공간을 따로 마련해주거나 다양한 운동기구를 설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늘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조차 오후 3시가 넘어 젊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자 노인들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길거리를 배회하다 지하상가로 향했다. 90대 이 모씨는 "요 며칠 햇살도 좋고 봄이 다가오며 꽃도 조금씩 피는 것 같아 오전부터 나와 걷고 있었다. 할 일이 없으니 오후까지 머무를 때도 있지만 젊은이들도 모이기 시작하면 집으로 들어간다"며 "젊은 친구들은 뛰어놀기도 하고 사진도 많이 찍는데 다 늙은 노인이 자리차지만 하고 있는 게 눈치 보일 때가 많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조정민 기자 jeongmin@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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