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도·세종시 등 역사적 책무 외면
충북학연구소 역사적 고증도 형식적
1914년 ‘창지개명’ 복원 노력 필요

미호강. 충북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미호강. 충북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충청투데이 김동진 기자] 일제 잔재 논란을 빚고 있는 미호강 명칭 변경에 대해 충북과 세종지역 자치단체·지방의회 등이 미온적으로 대처, 역사적 책무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세종·충북지역 문화·사회단체들로 구성된 ‘동진강 명칭 복원 추진위원회’는 미호강은 일제 잔재인 만큼 옛 이름인 동진강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어오고 있다.

추진위는 사실상 우리나라 주권이 상실된 1905년 을사늑약 이전 고문헌과 고지도에 ‘미호’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는 반면 동진강으로 표기돼 온 만큼 역사적 명칭 복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추진위에 따르면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을 비롯해 동국문헌비고(1770년), 해동역사(1823년), 김정호가 집필한 대동지지(1861~1866년), 연기현지도(1872년) 등에 동진강이란 명칭이 등장한다.

특히 대한제국 정부가 공식 발간한 교과서 격인 대한지지(1899년 초판 발간, 1906년 재판 발간)는 물론 증보문헌비고(1903~1908년) 등 숱한 고문헌에도 동진강으로 표기한 사실도 명확하다.

해좌전도(1850년)와 동여도(1856~1861년), 지방지도(1872년), 대조선국전도(1895년) 등 고지도에도 미호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으며, 동진강으로 명시돼 있다. 더욱이 1882년 일본이 발행한 조선전도와 조선내란지도에도 동진강으로 표기,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일본도 동진강이란 명칭을 사용했음이 증명된다.

미호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을사늑약 이후 일본 내무성이 만든 한국토목사업조사서에서다.

이후 1914년 소위 ‘창지개명(創地改名)’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던 하천명을 하나로 통일하라는 지시에 따라 미호천으로 굳어졌다.

이전까지 주로 동진강으로 표기됐으나 지역에 따라 북강, 미곶강, 주천, 반탄, 작천, 진목탄, 망천, 부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역사적 고증을 통해 미호천이란 명칭이 일제 잔재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충북도의회가 충북학연구소에 명칭 변경과 관련한 연구용역을 의뢰했으나, 충북학연구소는 당초부터 명칭 변경에 부정적인 입장이어서 용역 결과 역시 이같은 경향만 재확인하고 있다.

충북학연구소가 연구용역 과정에서 요식행위로 개최한 토론회에 명칭 변경에 부정적인 학자들만 발제자로 배정하는 등 편향성 논란을 자초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충북학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연구용역 최종결과 역시 ‘을사늑약 이전 역사적 문헌상 미호라는 이름은 없고 동진강 등으로 표기된 것은 사실이나, 이를 일제 잔재로 규정하기엔 무리가 있는 만큼 반드시 변경해야 할 필요성은 적다’는 내용으로 귀결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충북·세종지역 지자체와 지방의회 등은 충북학연구소의 편향된 연구용역 결과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사용해 온 데다, 일제 강점기 이후 개편된 지명이나 하천명 등을 변경하지 않은 사례도 있는 만큼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전국적으로 여러 자치단체들이 다소 불편이 뒤따르더라도 일제 잔재 명칭 변경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에 따라 충북·세종지역 지자체와 지방의회 등이 앞장서 일제 잔재 청산과 창지개명으로 상실된 고유명칭 복원이란 역사적 책임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동진 선임기자 ccj1700@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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