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준·대전본사 편집국 정치행정부 기자
▲ 김성준·대전본사 편집국 정치행정부 기자

[충청투데이 김성준 기자] 2020년 8월 26일 처음 법정에 섰다. 2019년 8월 살던 다가구주택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간 지 1년 만이었다. 건물 등기부등본을 떼보니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었지만 부동산중개업자는 "이 정도 근저당권은 적정한 수준"이라며 안심시켰다. 그 당시 다가구주택에 근저당권이 설정된 경우는 흔했다. 부동산 붐이 일고 전세 수요가 급증하면서 다수의 투자자들이 은행에서 돈을 빌려 다가구주택을 짓고 임대사업을 했던 시절이다.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2년 뒤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몇 차례 유찰 끝에 매매가의 40% 수준 금액으로 낙찰됐다.

배당기일 재판정에는 경매로 넘어간 건물에 살던 피해자들이 모였다. 집을 오가며 봤던 낯익은 얼굴들이었다. 근저당권이 있는 지역 은행과 선순위 세입자 한두 명을 제외한 대부분은 배당금을 한 푼도 못 받을 처지였다. 한 세입자는 판사를 붙잡고 10여분간 억울한 점을 호소했다. 임대차계약만료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지만 임차권을 설정하지 않고 이사 가서 변제순위에서 밀린 세입자였다. 선순위 채권자였던 그가 후순위로 밀리면서 자연스레 그다음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는 안타까운 상황이 연출됐다. 배당이 끝나고 법원 안에 있는 은행으로 향했다. 법원보관금 출급명령서를 내고 최우선 변제 제도에 따라 전세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았다. 떼인 돈으로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상상하니 속상했지만 별수 없었다. 세입자 대부분은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이 넘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 했다.

수년이 흐른 요즈음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를 중심으로 전국에서 전세사기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이른바 ‘건축왕·빌라왕’으로 불리는 미추홀구 전세사기꾼들이 지닌 주택이 3000여 채에 달하고, 임대차신고 보증금 합계액은 2309억원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들로부터 전세사기를 당한 한 지인은 올해 초 미추홀구 아파트를 떠나 6살짜리 아들과 함께 낙향했다. 온 정신이 전세보증금 반환 여부에 쏠려있다 보니 새 삶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다. 대전 서구 괴정동의 한 다가구주택에 사는 20대 청년은 지난 2월 집이 경매로 넘어가 빚더미에 오를 처지다.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전세사기를 당한 청년 3명이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는데도 여전히 정치권은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안을 두고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여야는 하루빨리 합의해 피해자를 지원할 수 있는 실질적인 법안을 제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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