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옥 청주복지재단 상임이사

두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사회적 관심이 ‘자립준비청년’에 쏠리고 있다. 보육원에서 자라 독립을 준비하던 청년들의 자살이 사회적 관심을 부른 것이다. 남긴 쪽지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에 가슴이 아프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애발달주기에 따른 성인기가 되면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여 사회로 나가게 되고, 결혼을 준비하며 자립해간다. 부모도 아이를 보낼 준비를 하고 아이도 스스로 준비를 하고 사회를 배우는, 근 10년에 걸친 준비기를 가진다. 이에 비해 자립준비청년들의 자립은 이른 시기에 온전히 혼자 사회에 방출되는 느낌이었을 것 같아 참으로 두려웠을 것이다. 기댈 곳 없는 이들이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부담감과 세상에 나갔을 때 느끼는 외로움은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보호종료 아동에 대한 지원강화 방안을 마련했지만 잇따르는 죽음을 막지 못하고 있다. 시설에 더 머무를 수 있는 시간과 수백만 원의 돈, 주거지원, 정서심리지원 등은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체감하는 자립 현실은 여전히 두려울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준비를 잘해서 사회로 내 보낸다’는 것도 교육을 통해서이지 실제 상황에서 두렵기는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정책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시설에서 생활하다 성장하여 성인이 되면 자립하는 것이 맞다.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그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맞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정책적 지원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사랑과 인간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역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울타리가 되어주는 지지자가 필요한 것이다. 부모가 부재하거나 도움과 지지가 되어주지 못하는 현실은 이들 청년들에게는 가혹한 삶의 무게가 된다. 이들의 짐을 덜어주고 어깨를 다독여주는 어른이 필요하다. 그런 역할은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어른들이 해주어야 한다. 정부는 2007년부터 자립준비청년들의 개별 지원을 위해 자립지원 전담요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전담요원 1명이 거의 100명에 가까운 청년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립전담기관이나 요원 외에도 자립준비청년들에게 기댈 곳을 만들어주는 다른 방식이 마련되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장기간 아이들을 보호하는 형태의 보육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가 심한 경우 시설에 위탁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아동들은 일반 가정에 위탁되거나 입양되어 자라게 된다. 우리나라도 시설보다는 가정위탁에 더 중점을 두고 입양과 가정위탁에 관한 인식개선운동에 역점을 두어야 할 시점이다.

혈연적 가족의 개념이 흐려지고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재하는 이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동을 가족의 울타리에서 보호하고 사랑으로 양육하는 것은 우리사회 어른들의 책임이다. ‘누구의 아이가 아닌 우리의 아이’로 이들이 외롭지 않게 지원하는 따뜻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가족 같은 관심과 지원 속에서 자립을 준비하여 청년들이 둥지를 훌훌 털고 떠나 새로운 세상을 마음껏 날 수 있는 그런 따듯한 사회를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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