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청주시 공동주택과 공동주택조사팀장

2022년 새해 달력을 넘긴 어느 날, 퇴근 후 현관문에 붙여진 마스크 1장과 예쁜 손 편지에 하루의 피곤함이 사르르 녹는다. 그 편지에는 새로 이사 온 이웃이 리모델링 소음으로 인한 미안한 마음과 코로나19를 이겨내는 이웃들을 향한 건강 기원이 담겨 있었다. 아파트에서 이웃과 "함께 한 걸음" 배려를 향해 다가가는 壬寅年이 기대된다.

이웃이 건네준 예쁜 손 편지는 결혼 후 처음으로 장만한 내 집 아파트에서 가족이 가꾸어 갈 설렘과 이웃과의 소통을 위해 17층까지 정 나눔을 했던 팥떡, 그리고 크리스마스 카드 인사말로 두 번째 인연 맺기를 했던 아파트 생활을 떠오르게 했다.

그 옛날 오창산단 허허벌판에 층층이 올라가는 아파트를 보며 기다림 끝에 입주한 아파트 생활은 꿈만 같았다. 하루 종일 빛이 내리쬐는 따스함을 간직한 집에서 아이들은 술래놀이를 하며 뛰고, 금요일 밤 먼 길을 달려 도착한 남편은 청소기로 온 바닥을 말끔히 정돈하고, 주부로서 필자는 저녁 준비를 위해 절구에 마늘을 빻고, 드르륵 믹서기를 돌리고, 식사 후 세탁기는 베란다에서 열 일을 하고, 2살 터울 자매들이 떠드는 소리, 부부간의 갈등 소리가 뒤섞인 우리 가족 아파트 생활 풍경은 3년간 이어졌다.

가끔 남편과는 "우리 아파트는 튼튼하게 지어졌나 봐, 위층은 조용하고, 아래층도 전혀 얘기가 없어, 아파트를 잘 선택한 것 같아"라며 자족했던 그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래층 이웃은 위층인 우리에게도, 관리 사무실에도 얘기를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찌나 창피하던지, 아파트가 튼튼하게 지어졌다고만 생각한 무지와 오만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어 미안한 마음을 과일 상자에 담아 아래층에 전달했다.

그 이후에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생활 소음 줄이기를 했건만 층간 소음 때문이었을까? 3개월 후 아래층은 이사를 갔다. 복도에서 만난 이웃은 우리 때문에 가냐고 하는 나에게 극구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보일러 고장으로 아래층 세대 천장 누수가 발생할 때 적극적인 중재로 원만한 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고, 딸들의 비대면 수업을 위해 흔쾌히 ‘세대 내 인터폰’을 해 준 관리사무소 직원분들이 있고,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 따뜻한 사랑방인 엘리베이터가 있는 배려하는 아파트 생활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물론, 지금도 층간 소음 자제와 코로나 방역수칙 준수를 당부하는 아파트 방송은 지속되고 있고, 아파트 입주자들 간 갈등으로 인한 다양한 민원이 접수되고 관리사무소 관계자들 또한 아파트 관리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배려와 소통으로 서로 협력하며 이웃을 보듬는 아파트 미담 또한 들리기도 한다.

모든 갈등은 법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배려를 향해, 소통을 향해 서로에게 "함께 한 걸음 다가가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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