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김일순 교육문화팀장

“귀하가 살고 있는 인근 주민 10명 중 9명은 세금을 납부했습니다. 현재 귀하는 아직 세금을 내지 않은 소수에 속합니다.”

세금고지서에 이와 같은 문구가 들어 있다면 어떨까. 실제 영국에서 세금 체납자들에게 ‘당신이 사는 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세금을 냈다’는 내용이 들어간 고지서를 보냈더니 세금 징수율이 크게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영국 정부가 사람들의 성향과 행동패턴 등을 연구하는 행동경제학 이론을 실험적으로 정책에 반영해 효과를 본 사례다.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심리인 ‘비교성향’을 활용해 세금 납부에 대한 저항을 줄이고 비용까지 아끼면서 효율적으로 세금을 걷은 것이다.

나와 남을 비교하는 비교성향은 자기발전의 촉매제로 작용하는 등 긍정적인 순기능이 있다.

또 기부액을 노출되도록 유도해 기부행위를 촉진하는 등 사회적 공익 효과도 있다. 하지만 비교성향은 건강과 삶의 만족도, 행복지수를 낮춰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부정적인 면이 더 크다.

비교성향 정도는 지리적 조건과 역사적 환경, 사회적·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다른데 한국인의 비교성향은 유별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 소식을 전한 외국 언론의 기사를 보더라도 한국인의 남다른 비교성향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미국의 타임즈는 “남의 눈을 의식하는 성향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교황이 선택한 작은 차는 많은 한국인을 놀라게 했다”고 보도했다. 영국의 일간지인 텔레그래프도 "사회적 지위나 부를 드러내놓고 과시하기를 좋아하고, 경쟁이 극심한 한국에서 겸손하고 절약하는 교황의 행보가 큰 화제가 됐다"고 소개했을 정도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전국의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비교성향을 조사, 분석한 ‘비교성향의 명암과 시사점’이라는 연구자료를 발표했다.

국책 연구기관이 남과 비교하는 심리를 연구 주제로 삼은 것도 이채롭지만 어찌 보면 한국사회의 강한 비교성향 정도를 반증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연구자료에 따르면 자아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정의하는 집단주의 문화를 가진 동아시아인은 독립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서구인에 비해 타인의 눈을 의식하고 비교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한국인은 전근대적인 신분제가 외세의 지배로 철폐된 후 계층을 초월한 교육열과 학교의 상대평가체제 속에서 비교성향이 강해진 것으로 분석했다.

국가별 비교성향을 파악하기 위한 모의도박 실험에서도 미국인은 자기 몫에만 관심을 보였지만, 한국인은 경쟁자와 비교되는 상대적인 몫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비교성향이 강한 사람은 타인의 눈을 의식해 남들의 행동을 따라 하는 집단추종 경향이 강했고, 불안감과 스트레스, 우울증, 실패감 등 종합적인 심리건강지수가 현저하게 나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비교성향이 강할수록 상대적인 박탈감도 크게 느껴 소득수준이 올라가더라도 행복감은 크지 않았다. 베스트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저자 혜민 스님은 “사람들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키워 간다”며 “내 안에 있는 나만의 빛깔을 발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모처럼 가족과 친지, 지인들과 함께 하는 추석날. 자칫 비교의 늪에 빠지기 쉽다. 대체휴일까지 포함된 넉넉한 추석연휴 기간 잠시나마 여유를 갖고 외부로만 쏠렸던 시선을 내부로 돌려 보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독창적인 존재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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