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란 수필가

전화를 받았다. 치매가 걸린 시어머님을 모시던 친구가 상을 당했으니, 저녁에 문상하러 가자고 한다. 조문 하고 돌아오는 길에 찻집에 들렀다. 건망증이 점점 심각해진다며 치매가 아닐까 이구동성 이야기를 쏟아냈다. 우리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럴 나이가 되었다고 인정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서로를 토닥였다.

‘보이고 싶지 않은 나’를 드러내며 가족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시아버님도 치매가 있었다. 특히 먹는 것에 집착하셨다.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약봉지처럼 싸서 음식을 서랍 구석구석에 숨겨 두셨다. 당뇨로 실컷 드시지 못해 그것이 한이 되신 모양이다.

친구 시아버님은 집문서와 통장을 숨겨 두었다고 한다. 치매에 걸린 아내가 부동산에 집을 내놓기도 하고 은행에 가서 통장에 있는 돈을 찾았다가 다시 저금하는 일을 반복한다고 한다. 집을 사고 파는 일을 하는 남편 곁에서 신경을 많이 쓰며 살아온 탓이리라.

얼마 전부터 요양원 재능기부를 다닌다. 회상을 통한 이야기 치료이다. 무심한 눈빛으로 앉아 계시는 어르신이 있는가 하면, 다녀와서도 화장실을 데려다 달라고 떼를 쓰는 어르신, 의자로 문을 치며 집에 간다고 소리 지르는 어르신, 잠만 주무시는 어르신 등, 치매 증상이 아주 다양하다.

치매는 건강, 성격, 교육수준, 문화적 환경에 따라 증상도 정도도 다르다. 그만둘까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삶의 그 너머 있는 기억을 회상을 통해 자기를 인식하고 표현하게 돕는 일이 무의미하지 않았다. 어렴풋한 기억을 힘겹게 건져 올려 이야기 하며 환한 표정을 짓는 어르신들을 보면 ‘지금 이 순간’만의 삶의 축복이 아닐까 가슴 뭉클해진다.

치매가 오면 감정 상자가 열리고 자신을 감싼 마음의 포장이 풀린다. 둥그런 뇌 속 시냅스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감정 조절과 억제가 해제되면 마그마가 분출하듯, 선물 상자가 풀리듯, 내 안의 자신이 터져 나오고 만다. 수많은 삶의 기억들이 무의식에 쌓여 긍정의 감정은 착한 치매로, 부정의 감정은 미운 치매로 나타난다. 부정의 감정이 앙금으로 남아 의식의 끈을 놓칠 때 불끈불끈 미운 치매로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내 안에 없는 것이 나오진 않을 터이다. 치매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야 한다. 화초를 가꾸듯 삶을 가꾸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미운 것이 기억 창고에 쌓이지 않도록 살펴야겠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