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래 유성구청장

지난 4월 한 기자에게 들은 일화다. 대덕연구개발특구의 한 정부출연연 기관장이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의 시장을 만났다. 이 도시의 교통수단으로 제안한 자기부상열차 도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해당 카운티의 시장은 실험동물을 뜻하는 ‘모르모트’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너희가 개발한 기술의 시험장이 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이는 세계적인 기술도 실증무대가 없으면 상용화가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하다. 최근 ‘기정학(技政學) 시대’라는 용어까지 자주 등장한다. 지리적 위치가 국운을 좌우하는 지정학(地政學) 시대에서 기술이 운명을 좌우하는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는 것이다. 기술패권 경쟁의 핵심 동력은 첨단기술 개발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실증 없는 실용화는 불가능하다. 해외 선진 국가와 도시가 신기술·제품의 성능·효과를 시험하는 테스트베드(Test Bed) 구축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이유다.

스웨덴 예테보리의 아스타제로(Astazero)가 대표적이다. 이 곳에서는 도로의 길이·폭, 하중, 제원 등 다양한 교통환경을 구현할 수 있다. 미국 미시간주는 주 정부와 기업이 1000만 달러를 투자해 자율주행차 테스트베드‘M-City’를 구축했다. 스페인 산탄데르는 도시 전역에 약 2만 개의 센서와 카메라를 연결해 실시간으로 도심 데이터를 수집하며 취합한 데이터는 환경·주차·치안·조명 등 스마트시티 구축에 활용된다. 도시 전체가 테스트베드인 셈이다.

대전 유성구는 지난 2020년 전국 최초로 테스트베드 조례를 제정했다. 이후 △2021년 7건 △2022년 21건에 이어 올 상반기에만 28건의 사업 제안을 받았다. 28건 중 17건은 지원했거나 진행 중이다. 양만 증가한 게 아니다. △스마트 경로당 △AI 기반 무단투기 예방 시스템 △상지재활로봇 도입 △스마트 전기화재 예방 솔루션 △AI 기반 실시간 사고 신고 플랫폼 △미세먼지 발생원 모니터링 실증 등 주민 생활과 직결된 사업이 확대되고 있다. 유성구의 테스트베드는 지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스마트 경로당 사업은 전국 10여 개 지자체가 벤치마킹을 다녀갔다. 최근 열린 목민관클럽 정기포럼 등에서 구의 테스트베드 지원사업과 운영 방식을 소개해 타 지자체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올해는 전국의 연구기관 및 기업에 관련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다. 이러한 과학기술 지원군 역할은 선택이 아니라 대덕연구개발특구를 품고 있는 지자체의 책무다.

대덕연구개발특구와 과학기술 지원군 유성은 부분집합이 아니라 교집합이다. 동일한 목표를 찾고 시너지를 강화해야 한다. 연구기관·대학·기업 등에서 개발한 기술을 실증하고 그 기술이 지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이런 일이 쌓일 때 비로소 대덕연구개발특구와 유성, 대덕연구개발특구와 대전은 합집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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