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건영 세한대학교 교수

오스트리아에 머물다가 연주 일정과 마스터 클래스로 우리나라를 찾을 때면 먼저 달려가는 곳은 고향이다. 버스가 마을 어귀에 나를 내려두고 다시 출발한다. 버스 액셀러레이터 소리에 맞춰 심장이 뛴다. 쿵쿵. 나는 천천히 내려왔지만 그 옛날 신작로에 일고는 했던 작고 투명한 먼지바람 한줄기에 걸음이 빨라진다. 아첼레란도(점점빠르게). 집이 저만치 있다.

교회 예배당은 작은 시골마을에서 유일하게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피아노를 연주하던 고등학생은 대학에 입학했고, 그 동생이 다시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또 도시로 떠났고. 몇 번의 바뀜과 떠남이 반복되다가 피아노 의자는 빈자리가 되었다. 어머니는 김이 올라오는 밥을 젓다가도 이따금 혼잣말을 하신다. "누가 피아노 좀 쳐주면 좋을 텐데" 엄마에게 그 누구는 당연히 나다. 그 말끝에 얼마나 많은 뜻이 함축돼있는지 나는 안다. 아들이 고국을 떠나있다는 사실, 소 값보다 비쌌던 마림바가 우리 집에 들어온 날 아버지의 휘둥그레진 눈망울, 빈 운동장에서 이따금 잔상처럼 들려오는 관악대 연주…. 그것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어머니의 피아노 이야기 뒤에는 늘 못 들은 척 괜히 물이나 한 잔 찾거나 머쓱하게 자리를 뜨고 만다.

어머니의 투정을 애써 피해 찾는 곳은 나의 놀이동산이었던 학교다. 이제는 폐교가 되어버린 곳. 한 번은 친구와 여행길에 작은 학교를 보게 됐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멀지 않은 그곳에는 내 모교 학생들의 생활기록부가 보관돼있다고 했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차에서 실로폰을 내렸고 모차르트 곡을 연주했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던 아이들 무리가 달려와 우리를 둘러싸더니 이내 운동장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여행의 동행자가 되었다. 어느 곳에서나 연주하고, 세상 모든 청중과 불시에 만나는 이 연주회가 성립되는 순간 작은 떨림을 느낀다. 서울에서 가장 큰 콘서트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의 전율을 언젠가 악기로 표현해 내리라 다짐한다.

아이들은 어려운 모차르트의 곡보다 처음 보는 악기들에 더 관심이 많다. 이미 흥에 취한 나는 차에서 봉고라는 라틴 악기와 작은북을 꺼내어 보여준다. 아이들에게 직접 쳐보라고 하니 만면에 미소를 띠며 신 나가 두드리는 아이들. 분위기는 고조되고 나는 신청곡을 받는다. 만화 주제곡이 최고지. 아는 만화 주제곡을 죄 모아 즉흥 메들리 연주를 하니 아이들은 그야말로 경청한다. 뛰고, 깔깔거리고, 하품하고…. 사심을 버리고 오로지 듣는 그 순간이 바로 경청이겠지. 그래서 결심한다. 프로그램이 없는 음악회야말로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러니 계속 악기들과 떠다녀야지. 무엇을 준다 생각하지 말고 사람들 떠드는 소리, 하품하는 소리, 웃는 소리를 담아 악기로 삼아야지 생각한다. 그리고 이 여행이 가능하게 해준 세상의 모든 자연과 하나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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