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국회의원

▲ 조승래 국회의원

 4월은 과학의 달이다. 특히 올해는 정부와 민간을 합친 국가 총 R&D 투자가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하는 해로써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 이제 우리나라도 미국·중국·독일·일본에 이어 세계 5번째로 국가 R&D 100조원 시대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1963년 불과 12억원으로 시작한 국가 R&D 투자는 정부와 민간의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연평균 20%의 가파른 속도로 성장했다. 1996년 10조원을 돌파한 이후 25년 만에 10배가 증가한 100조원 투자가 현실화된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선제적인 R&D 지원을 통해 논문·특허 등 과학기술적 성과가 크게 늘어나 SCI 논문 수 세계 12위, PCT특허 출원 세계 5위 국가로 발돋움했다. 또 정부와 민간의 협업을 통한 R&D 투자 확대로 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자동차·조선 등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첨단 주력산업 육성에 성공했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지속, 미·중 무역분쟁 심화 등 국내외 환경의 급속한 변화로 인해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국민들의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성 극복과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과학기술 발전방안이 뒷받침돼야 한다. 오늘날 새로운 부가가치와 추가적인 경제성장은 기술혁신에 기인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500대 기업 랭킹을 봐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새로 진입하거나 순위가 상승하는 기업들은 대부분 기술혁신 기업들이고, 이런 기업들이 늘어나면 자연스레 국가경쟁력도 높아지게 된다. 한마디로 21세기 자본주의의 경제성장은 과학기술지식의 생산과 활용에 의한 것이며, R&D는 자본을 과학기술지식으로 변환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 R&D 100조원 시대를 맞이한 지금,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실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효과적인 R&D 투자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시민참여연구센터, ㈜대덕넷 등과 함께 2월 24일부터 지난달 10일까지 '과학기술 100조 투자 시대'를 주제로 특별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과학기술인 339명(47.5%), 과학기술계 유관분야 종사자 208명(29.1%), 일반 비(非) 과학기술계 종사자 167명(23.4%) 등 총 714명이 설문에 참여해, 국가 과학기술 정책 및 전략 평가, 연구기관 운영, 제도·소통 및 리더십, 책무와 기여, 기타(과학 금융) 등에 관한 39개의 질문에 답변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현행 제도와 정책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국가 과학기술정책 평가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선택한 답변은 "선도기술 추격 모델에서 벗어나고 있으나 기술적 리더십 형성은 일부 영역에 국한된다"였다. 기술적 발전 방향을 선제적으로 예측하고 선도하기 위한 전반적인 정책적 기반과 경험이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특히 기(旣) 발생한 현안의 해결방안 마련에 대해선 잘하고 있다는 답변이 절반에 가까웠으나(49.2%), 향후 미래 사회·경제적 이슈에 대한 대응은 적절하다는 답변이 40.3%로 아직 부족하다는 반응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러한 경향은 이공계 학생을 포함한 과학기술인들의 답변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현안 해결 긍정 46.0%, 미래 대응 긍정 34.5%).

 이처럼 현행 과학기술정책과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R&D 100조원 시대'에 걸맞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예를 들어 PBS(연구과제 중심 운영제도)와 같은 제도는 1996년 R&D 총액이 10조원에 이르렀을 때 모방과 추격형 기술개발에서 탈피하고자 마련된 제도인데, 20년 넘게 큰 변화 없이 유지되면서 연구 현장과의 괴리가 커졌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41.2%가 "연구소 특성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으며, 28.7%는 "큰 폭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과학기술 생태계가 각자도생형 경쟁이나 단기성과 위주의 사업들에서 벗어나, 미래 경제발전을 이끌 지속적인 기술혁신을 추구하기 위해선 PBS를 비롯한 현행 과학기술정책의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뉴 노멀 시대, 엄청난 R&D 규모에 걸맞은 새로운 과학기술 거버넌스 구축을 위해 이제 정부와 국회 그리고 과학기술계 지도부가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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