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작품 '밀밭'(1890)(위쪽)과 그 현장

1985년 조용필 가수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대중가요 가사에 저명한 외국인물 실명이 등장한 희귀한 사례였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야.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기나긴 독백 속에 잠시 스치듯 등장하는 화가 고흐의 이름은 5분 20초나 걸리는 긴 노래에 강렬한 흡인력을 북돋웠다.

고독과 궁핍 속에서 짧은 삶, 강렬한 아우라를 남긴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잘 알려진 예술가인 동시에 그간 여러 면에서 왜곡되거나 사실과 차이 나는 일종의 신드롬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 고흐의 발자취를 좇아 유럽 4개국 현장을 답사하고 그의 삶과 예술을 깊숙하게 들여다 본 신간, '길 위의 빈센트 (홍은표 지음, 인디라이프 발행)는 그런 면에서 흥미롭다.

고흐가 몇 가지 결함을 가졌고 실패를 거듭했어도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점, 가난하고 힘없는 보통사람들을 향한 눈길을 거두지 않았던 사실은 세상을 떠난 지 130년이 되는 지금까지 그를 기억하고 애호하는 큰 바탕이 된다. 특히 고흐의 삶과 예술은 우리의 연면한 공감대인 '한(恨)'의 정서와 일견 공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고흐와 관련한 몇 가지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새로운 이해가 필요한데 가령 '지독히 가난했다'는 평가는 창작을 그 무엇보다도 우선한 그의 '자발적 궁핍'으로 설명될 수 있고 친구가 없었다는 대목은 어쩔 수 없는 우울을 이기기 위하여 그림에 더 매달렸다는 정황으로 풀이된다. 정신질환에 관한 이런저런 추론 역시 '잠재적 간질의 발현'에 따른 고통이 증폭되었을 것이다.

올해 고흐 130주기를 맞이하여 그에 얽힌 과도한 신화와 무분별한 억측을 걷어낸다. 한 예술가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바라보면서 팬데믹 와중에서 갑갑한 일상을 강요당하는 이즈음, 고흐가 피폐하고 외로웠던 삶을 헤쳐 나간 족적 마디마디에서 공감과 위안을 찾아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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