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식(1036 ~ 1101)

장강은 동쪽으로 굽이쳐 흐르며
세찬 물결로 천고의 인물들 다 쓸어가 버렸네.
옛 성의 서쪽에는
사람들 말하길 삼국의 주유가 싸웠던 적벽이 있다네.
어지러이 널린 바위 구름 뚫을 기세로 솟아있고
성난 파도는 강기슭 할퀴며 달려들어
천 겹의 눈덩이 쌓아올리듯
이 강산 한 폭의 그림 같으나
한때 영웅호걸 그 얼마나 많았던가!
아득히 멀리 주유 살던 때 생각하니
소교와 막 혼인하고
영웅의 자태가 드높았으리.
깃털 부채와 비단 두건 쓰고 담소하던 중
적군의 배는 재가 되어버렸지.
이 마음 혼백 되어 고향 땅 노닐 때
정 많던 그대여 날 보고 웃겠지.
일찍 희어진 머리 보고서
인간의 삶이란 꿈과 같은 걸
강에 비친 달에 한 잔 술 권하노라.

소식(蘇軾)의 시 가운데 대표작의 하나로 호방한 기개를 내뿜는 작품이다. 그가 황주에서 귀양살이 하던 때 적벽(赤壁)을 찾아가 과거의 적벽대전을 회고하며 쓴 글이다. 황주에서의 귀양살이는 소식의 인생관을 더욱 성숙하게 하였고, 작품 창작에도 더 진중하고 깊이 있는 전개를 도와준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어쩌면 황주에서 소식의 삶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황주에서의 시간은 소식의 인생에 창작의 절정기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때 지은 작품들에는 강한 기개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한시(漢詩)를 읽는 맛은 무엇보다 풍광의 묘사가 뛰어난 점에 있다. 시행마다 펼쳐지는 풍경이 전면에 등장하여 형상성을 풍부하게 한다. 그리고 시의 말미에 언제나 시인의 심사를 드러낸다. 전경(前景) 후정(後情). 위 시에도 보이듯 자연의 장엄한 위엄이 우리 생의 신산과 고초를 아주 작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다. 봄이 왔다. 자연의 변화란 이렇게 엄격한 것. 삼동의 추위가 아무리 대지를 뒤덮고 억눌러도 작은 풀씨 하나 대지를 뚫고 나오는 법. 풀잎 하나 천길 벼랑의 암벽을 밀고 나오는 것이니. 지극히 큰 것은 눈엔 절대 보이지 않는 법이다.

김완하(시인·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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