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청주시 1인1책 펴내기 강사

낯선 사람의 등장에 아이들 눈망울이 더 초롱초롱하다. 무심한 척 시선을 아래로 떨구지만 흘낏흘낏 쳐다보는 얼굴빛에서 호기심과 경계심이 역력해 보인다. 올해 초등학교 저학년들과 몇 시간씩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내게 주어졌다. 개학을 앞두고 어린 새싹들을 만날 생각에 설레기도 했지만 걱정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교실로 들어선 첫날, 아이들과 나 사이에는 세월의 굴레가 아주 굵게 선을 긋고 있음이 감지됐다. 세상의 웬만한 시끄러운 소리가 나를 향해 쏟아져도 무던해질 수 있는 평정심과 구변으로 맞서오던 나였는데 천진한 아이들 앞에서만은 세대의 큰 폭이 자꾸 움츠러들게 했다. 수십 명의 시선이 일거수일투족에 강하게 꽂히고 솔직한 질문이 여과 없이 던져 올 때면 심장이 속절없이 흔들거렸다. 내 한마디가 혹여 동심에 흠집을 낼까봐 두렵기까지 했던 첫날이다.

아이들은 여지없이 천진난만하다. 첫날은 이방인을 대하듯 잠시 주뼛거리더니 푸근한 할머니로 보였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애교쟁이가 되어 매달리며 품에 안긴다. 아이들과 나 사이에 엄청난 간극을 할미의 마음을 갖고 따뜻한 사랑으로 눈높이를 맞추어간다면 거리감의 장벽도 그리 높지는 않을 것 같다.

복지관 글 짓는 교실도 새 학기를 맞았다. 올해도 여지없이 집필의 꿈을 오랫동안 품어오던 신입 수강생들과 함께 개강 첫날을 맞았다. 자신의 존재를 나만의 책으로 엮어 세상 앞에 자서전이란 가치로 당당하게 내놓으려는 꿈을 갖고 오신 분들이다. 굽이굽이 돌아온 세월 길에 마주한 폭풍우도, 목마름도 이제는 담담하게 품을 수 있는 노을빛 연륜들이다.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내미는 용기와 인품이 가히 존경스럽다. 지나온 뒤안길을 헤아려 글로 풀어내려는 의지만으로도 황혼인생의 확실한 구도에 돌입했다 할 수 있기에. 사람들마다 옷매무새 하나하나가 다 다르듯 어르신들의 인생 여정은 참 각양각색이다. 질곡의 인생길을 돌아보며 기쁨도, 눈물도, 서러움도 한 올 한 올 사려서 한 권의 책으로 엮기까지는 각고의 노력과 시간이 또 필요할 것이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 간다 했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초등학교 입학하던 첫날, 교단 위 선생님의 자태는 내가 처음 접한 황홀경이었다. 첫날의 감흥은 어른이 되도록 가슴 한구석에서 커다랗게 품은 꿈으로 자리했다. 철이 들며 인생 항로는 순풍에 돛 단 듯 바람대로 가지 않는다는 걸 알아가며 때론 좌절도 했지만 언저리에서나마 꿈을 닮은 일을 하고 있으니 감사하다. 어린 새싹들과 함께하는 하루 중 짧은 시간이지만 꿈을 만들어가는 길에서 작게나마 일조 할 수 있다면 내 꿈도 더불어 이뤄진 것이다. 자신만의 책 만들기를 선망하며 문학교실을 찾아든 분들의 길라잡이로써 열정의 불쏘시개가 나의 역할이라면 행복은 내게 더 크게 다가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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