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범 단국대학교 정책경영대학원 초빙교수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하여 매번 공천파동이 있어왔지만 이번 22대 국회의원 선거는 공천과정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잡음이 큰 것 같다. 여야 각 당은 공천을 하는 데 있어서 시스템 공천을 했다고 한다. 시스템 공천을 했다는 것은 공정하게 했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도 반발하고 탈당하거나 분신하거나 분을 삭이면서도 컷오프나 감점 경쟁을 받아들이는 후보자가 한둘이 아니다. 또 한 가지 생경한 풍경은 선거법상 지역구의원은 그 지역구의 인재를 뽑아 국회로 보내는 일이다. 이것이 헌법과 공직선거법이 정한 시스템이다. 그런데 본인의 희망과 살아온 지역이 아닌 곳에 마치 아이들이 레고 블록을 꿰어 맞추듯 이리저리 사람을 지역에 맞추어 꽂는 재배치 공천을 하고 있다. 이는 법의 제정취지를 왜곡하는 것이다. 지금 국민은 주권자국민을 소외시킨 채 그들만의 헤게모니 싸움에 몰두하는 정치권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마이클 센델은 "정의로운 사회는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올바르게 분배한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공정한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지향한다. 헌법과 법률은 그러한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스템이 잘 만들어져 있어도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이 자의적이라면 그 시스템은 무너진다. 공정한 경쟁이란 사전에 명확한 평가기준을 대상자에게 미리 공개해야 하고 그 틀 안에서 평가가 진행돼야 하며 그 결과에 대해 평가 대상자가 승복해야 한다.

필자의 경험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10여 년 쯤 전 전라북도 완주군의 자치인재개발원에서 1년 동안 연수를 받은 일이 있다. 그 당시 영어 교과 선생님은 주한미군에서 제대하고 눌러앉은 ‘케니’라는 미국인이었다. 그는 주로 미국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쳤는데 유럽인들의 미국이주 과정, 인디언, 미국의 독립전쟁, 영화와 할리우드 스타들의 개성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재주가 많고 검소한 그는 컴퓨터를 잘 다루고 자동차를 스스로 고쳐 탔는데 차는 1980년대 중반에 나온 대우 프린스로 그때 당시 87만 km를 달렸다고 했다. 그렇게 오래 타면 자동차 회사들이 다 망한다고 하자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새 차로 바꾸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1년이 다 지나고 12월에 수료를 할 때가 됐다. 12명이 한 반이었던 우리들이 다 같이 앉은자리에서 케니 선생님 성적발표를 들어야 했다. ‘A’ 너는 듣기, 말하기, 쓰기, 읽기 모든 분야에서 엑셀런트 하다. ‘B’ 너는 무난한 굿 레벨이다. ‘C’ 너는 수업도 가끔 빼먹고 성실성이 떨어져 ‘D’급이다. 그는 이렇게 각자의 실력차이를 설명하면서 12명을 평점으로 줄을 세웠다. 이 메일로 개인의 성적만 통지해 주는데 익숙해진 우리에겐 당혹한 것이었으나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1등이나 꼴찌나 선생님 훌륭하시다고 입을 모았고 마지막 종강파티도 훈훈한 가운데 이뤄졌다.

혹자는 국회의원공천과 영어성적과 단순비교가 되느냐고 힐난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은 시스템의 운영자가 공정하면 그 결과도 공정하다. 그러니 정의롭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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