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명예교수

[충청투데이 김희선 기자] 선거철만 되면 온갖 소문과 음모, 선전과 선동이 거품처럼 일어나 현실을 뒤덮는다. 세계의 지정학적 질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미국 대선과 우리 미래의 풍경을 바꿔놓을 총선이 겹친 올해, 우리는 가짜 뉴스의 구렁텅이에 빠질 위험에 맞서야 한다. 우리는 과연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올바른 정치적 지도자를 제대로 선택할 수 있을까? 정치적으로 두 동강이로 갈라져 서로 적대시하는 극단적 분열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진영에 따라 자신만 옳고 상대방은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는데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게 가능하기나 하겠는가? 진실은 증발하여 사라져버리고, 가짜 뉴스만 활개를 칠 것이 틀림없다.

우리가 모두 진리에 관심이 없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떻게 될까? 정치인들은 서로에게 무지와 무능과 부패의 낙인을 찍으며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비난한다. 그것이 정권 심판이든 아니면 운동권 청산이든 그들은 자신들만이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진짜 현실이라는 게 있기는 한 것인가? 무엇이 우리의 구체적 현실인가? 우리는 이미 진짜와 가짜 현실을 구별할 수 없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토끼굴 효과’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토끼굴은 놀랍도록 또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초현실적인 상태나 상황에 빠지는 것에 대한 은유이다. 이 비유는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유래한다. 첫 장에서 앨리스는 흰 토끼를 따라 굴로 들어가 이상한 나라의 초현실적인 세계로 이동한다. 토끼굴은 기괴하고 비합리적인 경험을 상징한다. 마치 인기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우리는 우리를 무지하게 만드는 파란 알약 대신에 진실을 보여주는 빨간 알약을 먹고 ‘우리가 얼마나 깊은 토끼굴에 빠졌는지’ 알아볼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이미 토끼굴 같은 ‘가짜 현실’(페이크 리얼리티)에 빠졌다면, 그리고 우리에겐 진짜 현실을 알 수 있는 빨간 알약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현실을 알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현실을 알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세 가지 시대적 경향은 이 물음을 더욱 긴박하게 만든다. 하나는 익히 알고 있는 정치적 양극화 현상이며, 다른 두 가지는 이 시대를 특징짓는 기술적 흐름이다.

유튜브, 트위터, 틱톡과 같은 ‘소셜 미디어’와 텍스트와 이미지를 생성하는 ‘인공지능’이 결합하면 우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챗GPT 제작자인 오픈AI는 최근 짧은 명령으로 현실보다 더 현실같이 보이는 사실적 이미지와 영화를 빠르게 생성할 수 있는 인공지능 ‘소라(Sora)’를 출시했다.

우리는 지금 딥페이크(deepfake)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의 ‘딥 러닝’과 ‘가짜’(페이크)의 합성어인 딥페이크는 원본과 똑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와 캐릭터를 창조한다. 챗GPT를 사용하듯 원하는 텍스트를 입력하면, 인공지능 소라는 고화질 영상을 신속하게 만들어낸다. 이러한 정교함과 신속성을 기반으로 원본보다 더 많은 이미지가 생성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을까?

최근 논란이 된 ‘윤석열 대통령 양심고백 연설’ 영상은 그 자체로 딥페이크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저 윤석열의 사전에 정치 보복은 있어도 민생은 없습니다."라는 연설 내용은 이미 이 영상이 가짜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어 의도한 효과가 실현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딥페이크의 문제점은 그대로 남아 있다. 윤석열 대통령 풍자 영상이 딥페이크였는지 아니였는지는 문제되지 않는다. 해당 영상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실제 존재하지 않은 장면을 새롭게 생성한 딥페이크가 아니라 원본 영상을 짜깁기한 것이라는 국가수사본부의 보고는 핵심을 비껴간다. 영상 자체가 진짜라고 해서, 짜깁기로 만들어낸 내용이 가짜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댓글에 숨어 있다. "진짜인 줄 알았네." "가짜가 진짜보다 보기 좋다." 진짜인 줄 알게 만드는 딥페이크 기술이 정말 사용된다면, 어떻게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것인가?

딥페이크의 문제점은 그것을 탐지하기 이전에 이미 소비되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진짜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가짜로 판명되더라도 그것으로 영향받은 우리의 견해와 의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거짓과 허위의 토양에서 자라난 편견이라는 잡초를 쉽게 제거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짜를 하나하나 솎아내기보다는 가짜가 자랄 수 없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가짜 뉴스’를 좀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가짜 뉴스’는 ‘가짜’(페이크)와 ‘뉴스’의 합성어이다.

무엇이 뉴스인가? 뉴스는 최근의 사건에 관한 보고로서 전통적인 언론이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중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가짜 뉴스를 일종의 ‘허위 보도’로 이해하지만, 가짜 뉴스가 언제나 거짓인 것만은 아니다.

예컨대 유튜브에 올라온 ‘이강인 가짜 뉴스’를 보자. 대표팀 주장 손흥민과 이강인 선수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극적인 제목과 섬네일을 달고 있는 영상들은 이 사실을 왜곡한다.

가짜 뉴스는 전혀 사실이 아닌 현실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사실을 바탕으로 현실을 왜곡하여 보도한다. 간단히 말해서 가짜 뉴스는 우리를 잘못된 현실로 오도한다. 가짜 뉴스를 만드는 사람의 진짜 목적은 결국 공중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이다.

가짜 뉴스는 언제나 진짜 뉴스와 대비된다. 진짜 뉴스는 진실을 알리고, 가짜 뉴스는 허위를 보도한다. 가짜 뉴스로 우리를 기만하려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진실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진짜가 없다면 가짜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짜 뉴스를 만드는 사람이 진짜와 진실에 관심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이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지 아닌지에 관심이 없이 그저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늘어놓는 주장을 영어로 ‘불쉿’(Bullshit)이라 한다. ‘개소리’ 또는 ‘헛소리’이다. 가짜 뉴스가 판치는 세상이 진실에 대한 욕구마저 죽인다면, 의미 없는 헛소리만 만연한다. 가짜 뉴스가 만들어내는 가짜 현실이 두렵다면, 우리 공중이 가짜 뉴스가 자라지 못할 문화적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총선의 결과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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