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한 충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지난 주말 사촌 남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홍콩을 다녀왔다. 사촌 동생과 제수씨 모두 미국에 살고 있는 아시아계 1.5세 이민자이지만, 양가의 가까운 친지들이 모국에 살고 있기에 신부 측의 홍콩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아담하고 고즈넉한 홍콩섬 교외의 예배당에서 성공회식으로 치러진 결혼식은 그 자체적으로도 경건하였는데, 순간순간 어릴 적 함께 놀던 사촌 동생의 모습이 스쳐가고 어려운 상황에서 꿋꿋하게 이민자로서의 삶을 인내해 오신 이모부, 이모님의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울컥 쏟아지기도 하였다. 결혼식 후 점심과 저녁까지 장소를 바꾸어 가며 이어지는 피로연, 끊임없이 나오는 음식들, 양가 집안 어른께 정중히 차를 올리며 다시금 인사를 드리는 홍콩식 폐백, 피로연의 흥을 돋우기 위해 애쓰는 신부 측 하객이 부르는 강남스타일 노래와 춤 등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결혼식 문화를 직접 보고 참여하는 것은 흥미롭고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홍콩을 방문한 것은 이번에 세 번째였다. 그것도 대략 10년 간격이었는데, 2000년대 초 신혼여행차 홍콩을 들러 하루를 보냈었고 2010년대 초에는 국제학술대회 발표차 홍콩을 방문했었다. 이렇게 10년 간격의 방문을 통해 그때마다 홍콩의 분위기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느낌이란 게 홍콩 현지에서의 경험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보도된 홍콩에 대한 이런저런 뉴스를 통해 가지고 있던 선행지식에 기반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말이다. 특히 이번 방문에서는 홍콩의 분위기가 이전만큼 역동적이고 열정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홍콩은 1840년대와 1850년대 있었던 영국과 청나라 간 두 차례 아편전쟁의 결과물이다. 당시 청으로부터의 엄청난 차 수입으로 인한 무역적자를 메꾸고자 영국은 청으로 아편을 밀수출하고 있었다. 이것이 청 사회 전반에서 아편 중독 등 큰 문제를 일으키자 청의 조정에서는 영국 상인들에게 제제를 가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이것이 영국이 전쟁을 일으킨 계기가 되었다. 동양에서는 강국의 지위에 있는 청이었지만 최신 무기와 배로 무장한 영국군에게 청의 함대는 속절없이 무너졌고, 이에 따른 조약으로 홍콩섬과 구룡반도가 차례로 영국에 영구 ‘할양’되었다. 이후 홍콩 지역의 과밀화로 인한 전염병 문제와 청일전쟁 패배로 인한 지역 방어 문제가 겹치면서 영국과 청은 1898년 홍콩영토확장조약을 맺게 되는데, 홍콩의 북쪽 신계 및 인근 섬들을 영국에 99년간 ‘조차’한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이 조약의 ‘조차’ 내용에 근거해 홍콩은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실제 조약의 내용은 1989년 조차된 지역에 한정되지만, 중국은 이를 확장 해석하여 그 전의 조약으로 할양된 홍콩섬과 구룡반도까지 반환을 요구하였고 정치적 상황과 전쟁 위험성 등을 고려한 영국은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다만 1984년에 이루어진 양국 간 홍콩반환협정에서는 중국이 홍콩의 정치, 경제 구조를 일국양제의 조건 하에서 반환 후에도 50년 동안 지키기로 한 약속이 담겨 있었다.

현재 홍콩은 그러한 약속이 무색한 상황이다. 중국 정부는 홍콩의 중국화를 정치, 교육, 사회 전반에서 가속화하였고, 많은 경우 홍콩 주민들의 민의를 무시하고 강압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이 다반사가 되고 있다. 홍콩인들의 반중국 정서도 커지고 있는데, 오죽하면 요새 홍콩의 식당에 가면 광동어나 영어를 써야 대접받고 북경어를 쓰면 푸대접 받는다고 한다는 경험담이 적지 않다. 더구나 소위 중국 정부가 인정하는 ‘애국자’만 출마할 수 있도록 한 2023년 12월 홍콩 지방선거는 역대 최저인 27.58%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중국화 되고 있는 현 정치권에 대한 홍콩인들의 무관심과 무기력을 보여주었다.

80-90년대의 홍콩을 회상하면 현재의 홍콩은 아쉽고 쓸쓸하다. 세계 3대 금융 허브로 불리었던 홍콩의 명성은 사라졌고, 영웅본색, 중경삼림 등 한때 우리나라 극장가를 주름잡았던 수많은 홍콩 영화의 추억은 더 이상 새로운 추억을 만들지 못할 것 같다. 무엇보다 정치적 무관심과 무기력함이 홍콩인들의 역동성과 열정마저 억누르는 것 같아 사촌 제수의 모국으로서 내게 새롭게 연결된 홍콩에 대해 슬픈 마음까지 든다. 이제 한 달 후면 우리나라도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홍콩의 현실을 바라보며 아무쪼록 이번 선거가 우리 국민의 열정과 역동성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정치권에 간절히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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