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대전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양윤석 대전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양윤석 대전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외국인은 한국에 와서 2가지에 놀란다. 첫 번째로 교통 환승 시스템이다. 도로 인프라와 교통 정보를 디지털로 연계하는 지능형 시스템으로, 버스의 현재위치와 도착 예정 시간을 모바일로 알 수 있다. 또 지하철과도 환승이 가능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저렴한 교통비로 1~2번의 환승을 거치면 서울 어디든 나갈 수 있다.

세계 최초로 지하철을 건설했던 런던을 보자. 우리나라에 비해 3배에서 4배가량 이용료가 비싸지만 지하철은 텁텁한 냄새가 난다. 환승이라는 개념조차 없다.

두 번째로 놀라는 것은 의료 시스템이다. 1977년대 박정희 정권은 ‘유전무병 무전유병’의 싹을 끊기 위해 새로운 씨앗을 뿌렸다. 이후 김영삼, 김대중 정부를 거쳐 한국 특유의 창의와 형설의 공으로 만든 시스템이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최고 수준의 병원을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다. 한국인 중 90%에 달하는 사람들은 병원을 못 가는 이유가 시간이 부족해서일 정도다. 마음만 먹으면 동네 병원을 제쳐두고 서울 빅 5병원뿐만 아니라 진료 쇼핑도 할 수 있다.

복지 의료의 대명사로 영국의 자랑이라고도 불리는 NHS(국가 보건 서비스) 진료를 받아보자. 최소 4개월에서 8개월에 가까운 예약 대기를 해야 한다. 최근에는 1~2년까지 진료 대기가 늘면서 한 해 12만명이 진료 대기 중 사망한다. 미국은 어떠한가? ‘유전무병 무전유병’그 자체다. 미국과 영국은 1970년대 한국의 의료 사회상을 답습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하철과 자동차를 최초로 개발하지 못했다. 의료 기술, 의료 복지개념도 한국이 만든 것이 아니다. 21세기는 이런 기술 개발이 중요하지 않다. 기술은 금방 따라잡고 잡히기 때문에 기술과 기술을 엮어내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어떤 시스템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데, 여기서 한국인의 능력이 발휘된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의료 시스템과 세계 최고의 교통 환승 시스템, 이 모든 것은 한국인의 창의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 다시 한 번 한국인의 창의를 발휘해 보자. 저출산 이야기야 10년 전부터 있었지만 최근 출산율은 0.6%로 사상 최저 기록을 갈아 치우면서 이제는 누구나 느끼고 있다. 유치원은 노인 유치원이 되고 서울에서조차 초등학교가 폐교되고 있다. 소아과 폐업으로 인해 소아과 방문을 위해선 ‘오픈런’을 해야 하고 산부인과 폐업으로 주변에 병원이 없어 원정 출산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필수 의료 붕괴로 응급실을 가지 못해 뺑뺑이를 돌거나 교대 1차 9등급 합격 등은 저출산의 직격탄이다.

저출산 시대, 새로운 창의다! 1970년대 ‘유전무병 무전유병’ 사회를 전무후무한 한국적 의료시스템으로 창의했던 대한민국의 그 독창성, 대중교통 후발 주자였지만 기술을 뛰어넘어 시스템으로 엮어냈던 한국인의 그 창의성, 그 진취성이 다시 한 번 필요하다. 세계 최고의 능력을 갖고 있는 의료진과 OECD의 최고 수준의 병상 수를 유지하면서도 모두가 서울로 향하는 환자 쏠림을 극복하는 시스템, 지역의료와 필수 의료가 체계적으로 연계되는 시스템일 것이다. 진료가 자연스럽게 환승 되고 공유되는 진료 네트워크를 통해 지능적으로 연계되는 그런 시스템 창의가 절실하다.

남들이 하는 방식, 다른 나라가 했던 방법을 떨쳐버리고, 후배들이 자랑스러워할 새로운 창의다. 그게 원래 한국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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