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채영(1979~ )

이미지=아이클릭아트 제공
이미지=아이클릭아트 제공

아무도 모르겠지만
몰랐겠지만
나는 물을 기르고 있다.

키우거나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금씩 자랄 때도 있고
또 줄어들 때도 있지만 분명,
나는 물을 기르고 있다.

어느 날엔가 언니는
물 한 대접을 사이에 두고 웃다가
또 몰래 삼켜버리는 것을 보았다.
내가 언니의 나이가 되었을 때
목련꽃 숭어리째 떨어지듯 물이 목에서
철철 흘러넘치는 날이 많았다.

제법 주름이 늘자 인생 뭐 별거 있냐고
물목의 수위 조절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자두에 새콤하게 고인
갓 딴 오이의 와작거리는
딱 그만큼의 물
비온 뒤 땅 밟았을 때 물렁한 물기,
딱 그만큼
그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의 새해 시작은 발상의 전환으로부터 시작해야겠다. 어제의 나와 똑 같고 또 지난해의 너와 같다면 우리에게 새로움이 피어날 수 없다. 혁신. 혁신. 또 혁신. 우리의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라면 최고가 겨우 적당할 뿐이다.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의 정신. 그 역동성. 그러니 그러한 획기적 방향 전환만이 우리를 새길로 나아가게 하는 모멘텀 될 수 있다. 2024년은 그러한 대전환의 새로운 계기 되어야 한다.

우리 언젠가 대동강 물 팔겠다고 선언했던 봉이 김선달 이야기 읽고 코웃음 쳤던 적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반세기 되기도 전에 현실이 된 지 오래전. 그런데 이제 우리는 물을 기르겠다는 시인을 만났으니. 이 얼마나 기쁘고도 반가운 일인가. 이 시인의 말에 우리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물을 기르겠다니 말이다. 시인의 사랑으로 물들은 그 얼마나 잘 크고 잘 자라겠는가. 우리 모두 물을 잘 기르게 되어야만 우리 삶도 새롭게 솟아날 것이다. 콩나물 기를 때 물이 콩 사이로 스치기만 해도 콩나물 쑤욱 쑥 도약하는 것. 그러니 시인이 물을 키운다는 건 사실 물이 우리를 키운다는 바로 그것이다.

김완하(시인·시와정신아카데미 대표)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