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국회의원

전례없는 R&D 예산 삭감 사태로 과학기술계가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정부는 R&D 혁신방안과 글로벌 R&D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연구자의 도전과 혁신을 견인하는 제도 혁신을 표방했지만 이미 신뢰를 잃은 과학기술계에서는 예산이 수반되지 않은 제도 개혁은 의미가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직 연구자는 물론이고 이공계 학생, 일반 국민들까지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볼모로 잡는 예산 삭감을 규탄하며 원상복구를 요청했지만, 정부는 설익은 혁신방안만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그마저도 현장의 목소리가 충분히 담기지 못한 미봉책에 불과하다.

필자는 지난 12일 국회에서 ‘바람직한 R&D 발전방향 토론회’를 개최했다. 연구원, 교수, 대학원생 등 R&D 제도 개선과 관련있는 패널을 통해 R&D 제도가 어떻게 개선돼야 할지 논의해본 시간이었다.

참석자들은 이번 정부의 발표에 냉혹한 비판과 의구심을 보였다. 대부분의 혁신 방안은 과거 정부에서 발표된 내용의 재탕에 불과하며 제대로 운영되기 위한 예산 지원이 수반돼야 함에도 그런 대책은 전무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특히 ‘국가기술연구센터’제도를 도입해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센터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계획은 출연연 구조조정의 다른 이름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센터에 포함되지 못하는 임무는 종국에는 예산 지원을 축소해 고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안목을 통해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글로벌 R&D를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는 것에 대한 질타와 걱정도 쏟아졌다. 과학기술계가 요청한 연구과제 중심제도(PBS) 개편과 정부출연연구기관 기타공공기관 해제라는 과제들은 언급도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현장의 실망감이 큰 상황이었다.

대한민구의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준비해야 할 R&D 제도 개선 방안은 무엇일까?

이번 사태를 겪으며 과학기술계는 정부 재정 총지출의 일정 비율을 R&D에 투자하는 방안을 요청하고 있다.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연구를 위해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예산 지원이다. 다시는 이런 혼란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화 하자는 것이다.

연구비 운영의 유연성 확보도 과제다. 글로벌 R&D 등 다양한 협력 연구에 있어 국가간 회계연도 불일치 등 경직적인 제도가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글로벌 R&D를 밀어붙이기 전에 이런 세부적인 제도 개선이 선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연구원을 위한 제도 개선 요구도 나왔다. 전임교원이 되기까지 학생연구원 신분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연구에 매진해야 하는 학생들은 근로자도, 학생도, 연구자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있다. 이들의 현실을 반영한 명확한 제도와 틀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화예술계에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이 중요한 원칙으로 꼽힌다. 필자는 과학기술계에도 팔길이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단기적인 시각으로 R&D 연구 성과를 논한다면 연구자들은 쉽고 결과가 보증된 연구만 수행하게 될 것이다. 실패에 관대하고, 도전적인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더욱 많은 인재들이 이공계로 진학할 동기부여가 생긴다. 지금 대한민국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기술패권 경쟁 시대에 어떻게 기반을 쌓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결정된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모두들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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