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동 청주시 상당구 지적팀장

누구나 중·고등학교에서 세계의 4대 문명을 배웠다.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현대의 이라크, 시리아, 튀르키예, 쿠웨이트 이란)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에 세계 최초 문명이 발생했고,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 인도의 인더스강 유역, 중국의 황하 유역이 그것이다.

고대 문명 발상지가 강 유역에서 발달하였듯이, 고대 청주도 무심천 주변의 청주 읍성에 생긴 마을이 발전을 거듭하였을 것이다. 청주시도 전체 길이 34.5㎞, 유역면적 177.71㎢의 도시하천 무심천이 흐르는데, 상당구 낭성면 추정리 부근에서 발원하여, 남일면 고은리를 지나 청주 시가지를 남북으로 흐르는 자연 유수다. 지적 업무에 28개 토지 지목 중 17번째 하천은 ‘자연의 유수가 있거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토지’로, 부호는 ‘천’으로 표기한다.

본래 이 강에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 때 축조했다고 전해지며, 정월대보름 다리밟기 행사가 있었다. 또 4간 석재(四間石材)를 사용한 길이 33칸의 남석교(南石橋)가 있었으나, 무심천의 유로변경 등으로 현재 남문로(南門路)1가에서 석교동(石橋洞)에 이르는 도로 밑에 매몰되고, 그 일부만 남아 있다.

옛날에 그 다리에서 기원한 명칭 ‘대교천(大橋川)’으로 불렸던 것이 대동여지도(1861)에 나타나는 ‘대교천(大橋川)’이 현재의 ‘무심천’으로 등재되기도 하는 것이 확인된다. 이름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이 일대가 사찰 운집 지역이라서 불교의 용어인 무심을 그대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설로는 말 그대로 ‘무심한 개울’에서 왔다거나 깊이가 얕아서 無沈(무침)이라고 하던 것이 변형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현재에도 강변에 용화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무심천 주변의 흙 속에서 석불들을 발견하여 안치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무심천에 대한 설화가 있다. 무심천 옆에서 한 어머니와 어린이가 살고 있었다. 한 탁발승이 찾아오자 마침 일이 생긴 어머니는 승려에게 잠시만 아이를 돌봐달라고 간청했다. 탁발승은 이를 받아들였는데, 탁발승이 피곤해서 깜빡 잠이 든 사이 어린이가 무심천의 외나무다리 위에서 놀다가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후 어머니는 삭발하여 비구니가 되었고, 이 사실을 접한 주위 사찰의 승려들은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어린이의 명복을 빌어주는 한편, 승려들이 직접 튼튼한 돌다리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남석교라고 한다.

청운의 높은 뜻을 세웠던 모교인 운호고등학교의 교가에도 ‘흰 구름 드높은 우암산 아래 유유히 굽이치는 무심천 물결’ 이런 가사가 있다. 무심(無心)은 ‘아무런 생각이나 감정이 없음’을 나타내고 있어 무심천(無心川)은 한자 그대로 ‘마음 자체가 없이 자연의 유수가 있는 하천’으로 풀이되는데, 이는 ‘성품과 행실이 맑고 깨끗하며 재물 따위를 탐하는 마음이 없음’의 청렴(淸廉)과 같은 뜻은 아닐까· 공직자라면 누구나 깊이 새겨야 하는 절대 명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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