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현 사단법인 대전민예총 이사장

블랙리스트 사태는 장기간에 걸쳐 국가기관과 공무원, 민간인이 동원되어 다양한 기제를 통한 문화예술 표현의 자유와 문화예술인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음을 실증한 사례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실이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을 짜고 당시 김정헌 예술위원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이른바 좌파 예술인으로 찍힌 수십 명을 축출했고 주요 단체에 대한 지원금을 대폭 삭감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영진위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 지원금을 2015년 반 토막 내는 등 최소 5건의 블랙리스트 이행 사례가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의 개념 정의에 따르면 블랙리스트는 집권세력이 국가기관, 공공기관 등을 통해 법·제도·정책·프로그램·행정 등의 공적(公的) 수단 또는 강요·회유 등의 비공식적 수단을 동원하여,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른 문화예술인을 사찰·감시·검열·배제·통제·차별하는 등 위헌적이고 위법·부당한 행위를 하여, 문화예술인의 표현 자유와 권리 그리고 시민의 문화향유권을 침해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국가범죄라고 정의한다.

최근 국회 사무처는 국회 로비에서 개최하려던 굿,바이전의 작품들을 1월 9일 새벽 기습 철거했다. 일방적인 작품 철거에 항의하며 국회 사무처장과 면담한 결과 작가들은 "사무처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전시를 중단시킬 수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전시를 거부했다. 전시를 거부한 ‘굿,바이전 IN 서울’ 참여 작가들은 장소를 옮겨 벙커1에서 1월 11일부터 2월 9일까지 전시했다.

굿,바이 전시위원회와 대전민예총은 오는 3월 18일부터 24일까지 계룡문고에서 ‘굿,바이전 IN 대전’을 개최한다. 작가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아직도 제대로 된 해결이 없는 그날의 기억, 그 날(10.29) 국가는 없었다. 지금에서라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 떨어진 꽃들이 희망의 나비로 환생하여 날아감, 힘 있는 자들의 욕심으로 꺾여 가는 한 떨기 꽃 같은 영혼들이 있다. 하는 짓마다 뻑! 하는 말마다 뻑! 가는 곳마다 뻑!, 그가 대통령 출마 때 했던 말과 상황을 풍자한 것이 그대로 이뤄져 씁쓸하다.

백 명이 넘는 희생자의 이름도 부르지 못하게, 추모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이들이 있었으니까, 그들은 단지 숫자가 아니다.

진심 어린 사과와 제대로 된 추모를 받아야 하는 가슴 아픈 참가의 희생자다. 참사의 희생자들을 마약범으로 몰아 정부 책임론에서 벗어나려 끔찍한 프레임을 짠 검찰, 그리고 ‘압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에 따라 시민들의 눈을 가리는 기사를 내는 언론의 형태도 함께 비꼬았다. 자리 위에 올라가면 내리기가 싫어지고 아직까진 내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표현행위에 대한 국가의 간섭은 헌법의 핵심 이념으로서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다.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표현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격의 주체로서 존엄한 존재이며 고귀한 가치가 있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헌법에 대한 부정이며 인류의 역사적 자산으로서 인권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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