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순간이었다.

발을 내딛는 순간 삐끗하며 균형이 흔들리는 걸 수습하기도 전 땅바닥에 몸은 벌써 엎어졌다. 넘어진 그 순간 아픔보다는 거릿집 앞에서 넘어진 몰골을 누군가 보고 있을 외간의 눈총이 먼저 얼굴 위로 전해지는 것 같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처한 상황이 꿈이길 빌었고, 현실이면 이 순간이 찰나처럼 지나가길 간절히 원했다.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쪼그리고 앉아 무릎의 흙을 털어냈다. 누구도 달려와 부축하지 않는 걸 봐서는 인적이 뜸한 시간이라 아무도 나를 본 것 같진 않았다. 일어나 아무 일도 없는 양 한 발짝을 떼는데 그제야 무릎이 쓰리고 가슴의 통증이 몰려온다. 그보다 땅바닥을 짚었던 손가락 한 마디가 굽은 채 펴지질 않는 것을 보니 심상치 않을듯싶다. 손은 금방 부어올랐고 몸의 이곳저곳이 쑤셨지만 그래도 조신한 걸음걸이와 평정심을 유지하며 병원을 찾았다.

결과는 뻔했다. 아팠던 신체 부위마다 넘어진 흔적이 생채기로 남았고 제일 큰 사고는 손가락 골절이다. 조각난 손가락뼈를 철심으로 고정하는 수술과 몇 주간 장기치료를 요 한다는 진단으로 사태는 일단 수습되었다. 병상에 눕고서야 조금 전 처한 위급상황을 유추하니 그제야 헛웃음이 나왔다. 신체의 통증보다 남의 눈총이 무에 그리 중요하다고 미적대며 움츠렸던가. 여태껏 섣부르게 경거망동하지 않고 매사에 찬찬했던 행동거지가 말짱 허당으로 드러난 것 같아 더 창피했다. 마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시기가 노년이라며 겉모양보다는 체형에 맞는 신발을 착용하라는 의사의 진언 한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히며 더 아프게 한다. 신박한 신발 하나로 시들어간 세월의 흔적들이 어찌 감춰진다고 무조건 유행의 시류에 휩쓸려 걸맞지 않은 객기를 부렸단 말인가. 결국 객쩍은 용기와 허튼 선택은 너 자신을 바로 알라는 일말의 경종이고 울림이 된 꼴이 된듯싶다. 모자람과 허물을 덮으려고 겉치레에 치중한 것이 어디 몸에 걸치는 잡동사니들 뿐이었을까. 돌아보니 무수히 많은 시행과 착오로 미완성된 삶의 궤적들을 아직도 내 안의 허물로 무겁게 쌓여있는 것이 곳곳에서 보이는데.

나비도 자신을 감싸고 있던 허물을 벗고 서야만 비로소 우아한 날갯짓한다 하지 않던가.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어가며 당당하게 세월 앞에 나서는 것이 진정 아름다운 것임을 왜 자꾸 모른척하는 건지.

연륜에 걸맞지 않게 시류에 무작정 휩쓸린 어리석은 결과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몰골로 상처만 남는다는 걸 명심하리라. 나이 듦에 어떤 것이 진정 부끄러운 것이며 어떤 것이 내 삶에 딱 맞는 실용이란 걸 먼저 헤아릴 줄 아는 혜안으로 방정한 품행과 내면을 먼저 갈고 닦아 보석으로 빛내야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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