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준·취재2부 정치사회담당 기자

[충청투데이 김성준 기자] 지난달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 등장했던 말이 극중 낙마 신을 촬영한 뒤 죽는 일이 있었다. 죽은 말은 ‘까미’라는 이름의 퇴역 경주마였다. 경주마로서 성적이 썩 좋지 않았던 까미는 은퇴 후 대여업체에 팔렸고, 이날 주인공 말의 대역으로 투입된 터였다.

까미는 다리에 와이어가 묶인 채 감독의 큐사인에 맞춰 달리기 시작했다. 성인 여럿이 와이어를 잡아당기자 까미는 균형을 잃고 그대로 고꾸라져 목이 꺾였다. 며칠 뒤 까미가 죽었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촬영용으로 팔린 까미는 사고만 없었다면 다른 퇴역마들에 비해 운이 좋은 편이었을지도 모른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한국마사회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퇴역 이후 용도가 파악되지 않는 ‘기타 용도’ 비율은 2016년 5%에서 2017년 6.4%, 2018년 7.1%, 2019년 7.4%, 2020년 22.5%로 증가했다. 행방이 묘연한 말들 중 상당수는 불법으로 도축되거나 사적 용도로 팔렸을 가능성이 크다. 2019년 제주에서는 경주마들이 도축장에서 학대를 당하는 영상이 공개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동물권 침해 사례는 지역 동물원만 가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올빼미는 비좁은 우리에 갇혀 날지 못 하고, 몸길이가 최대 1m에 달하는 악어거북은 한 평도 안 되는 수조에서 다음 생을 기약한다. 드넓은 초원에 있어야 할 재규어는 콘크리트 바닥과 쇠창살로 이뤄진 우리에서 정형행동을 거듭한다. 동물원에서 나고 자라 평생 사람의 오락을 위해 살아간다.

까미도 평생 사람의 쾌락을 위해 달렸다. 한때는 관중의 환호 속에 과천 경마장을 질주했고,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드라마 시청률을 위해 험한 산을 내달려야만 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역할만 수행하는 촬영진의 행동에 사유(思惟)는 없었고, 결국 비참한 결과로 이어졌다.

KBS는 까미의 죽음을 계기로 방송 출연 동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가이드라인에는 △동물이 신체적으로 위험에 처하거나 정서적 스트레스를 받을 연기 장면은 최대한 CG를 통해 구현한다 △인위적으로 상해를 입히지 않는다 등이 명시돼있다.

늦게나마 관련 규정이 만들어졌으니 앞으로 제대로 지켜질지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김성준 기자 juneas@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