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수필가

생수병이 플라스틱 고치에 들어 친친 감겨 매달려 있다. 고치를 탈피하고 날갯짓하는 나비의 우화를 꿈꾸는 것일까. 아니 환경파괴라는 오명을 벗고 비상할 날을 꿈꾸고 있다. 우리가 마시는 맑고 안전하다는 생수가 플라스틱 용기들에 담겨있다.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물과 오염의 주범 물질이 한 몸을 이룬다. 작품의 소재가 플라스틱 생수병인 한희준 작가의 작품전이다. 작가는 관람객을 호기심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던진 의미를 찾고자 집중한다.

생수병을 소재로 다룬 작가의 시선이 특별하다. 작품에는 유화의 흔적도 보이고 물감을 묻힌 명주실도 보인다. 사진전이라 하기엔 전혀 카메라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작품도 여럿이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크기도 형태도 다른 그림이 나의 시선을 이끈다. 바닷물에 몸을 담근 생명체의 가뿐 숨결이 느껴진다. 동행한 벗이 그림을 보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던지지만, 그녀도 나도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어 궁금증만 커진다. 우리의 마음이 작가의 발길을 이끌었을까.

작가와 마주할 기회를 얻는다. 그는 기꺼이 자신이 작품에 담고자 한 의도를 들려준다. 작가는 플라스틱의 탄생과 역할 그리고 소멸까지를 담고자 한다. 생명체의 숨결이 전해오는 듯 호기심을 자극했던 작품은 플라스틱의 분해를 표현한 것이란다. 작가는 플라스틱이 인간의 삶을 해치는 물체로 남길 원하지 않는다. 플라스틱이 오명을 벗고 찬란한 날개를 펴 비상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의 작품 속 플라스틱은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 중이다.

생수병은 고치에서 벗어나 비상할 날을 고대하며 숨을 고른다. 아니 물속에서 숨을 참아내며 자신이 머문 흔적조차 남지 않고 소멸하기를 꿈꾸는 중이다. 인간이 자연과 외면한 채로 살아갈 수 없듯이 플라스틱은 인간과 떨어져서는 그 존재 의미가 초라하다. 작가는 그 존재의 미약함이 안타까워 플라스틱의 우화를 꿈꾸고 있는 것이리라.

작가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작품의 소재가 되고 영감을 주는 대상은 특별히 구애받지 않는다. 작가의 작품에서 플라스틱은 인간의 삶에 닿아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내가 아닌 우리, 혼자가 아닌 함께 사는 의미를 담고자 했으리라. 작품 속 생수병의 낯선 모습들에서 문득 나의 모습을 본다.

글을 쓰는 작가로서 나의 의식은 어디에 머물러 있을까. 독자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기억에 남는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시작한 작업이다. 아직 그 바람의 끝은 초라하기만 하다. 글에 아직 나만의 철학이 녹아들지 못한 탓이리라. 플라스틱 고치에 친친 감긴 생수병이 우화를 꿈꾸듯 나의 글이 문자란 고치를 탈피하고 수필다운 수필로 거듭 우화하기를 꿈꾼다.

*우화:번데기가 날개 있는 성충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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