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다.

퇴색한 생명의 조각들이 마지막 계절의 추억을 품고 마치 고별의 몸짓인 양 처연하게 전율하고 있다. 만추의 향연은 저마다의 빛깔을 아직 발하지도 못했는데 바람은 나무를 흔들어대니 가지 끝에 달렸던 잎새가 파르르 떨며 속절없이 멀어져만 간다. 구태여 밀어내지 않아도 때가 되면 떠날 텐데 왜 이리도 급하게 몰아치고 있는 것인지.

비바람까지 몰고 온 상강이란 절기는 얄궂게도 가을의 등을 떠밀어대더니 결국 앙상한 나목만 가을이 떠난 휑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며칠 전, 문학동인 선배님께서 아내와 이별을 준비 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수십 년을 함께해온 반려자가 저승길로 떠나가는 것을 준비 중이라는 그 처연한 소식을 전해 듣던 날, 만추에 찾아온 얄궂은 소슬바람만큼이나 가슴이 시렸다. 무엇보다 준비 중이란 단어가 가장 아프게 쓰인 것이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삼키다 만 돌덩이처럼 목울대가 뻐근하고 먹먹하여 한동안 가슴까지 후벼댔다.

이승에서 맺은 고귀한 부부의 인연을 어찌 고요히 내려놓고 가볍게 하늘길로 오를 수가 있을까. 그 서글픈 이별을 준비하는 중이라니. 그 처연한 과정을 남아있는 사람이 짊어지고 치러야만 하는 것 또한 고귀한 인연의 대가일는지.

삶과 죽음은 누구에게나 정확하게 찾아온다지만 얽히고설킨 인연의 타래를 홀연히 내려놓고 떠나는 마음과 남아서 떠나보내는 길을 준비하는 그 두 마음은 어떠할까.

돌아보니 내 삶 속에서 남편과 함께한 수십 년의 시간이 참으로 존귀하다는 걸 그리 인지하지 못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세상살이 중에 주어진 수많은 과업이 고달프다 투정만 했지, 반쪽과 반쪽이 만나 하나를 이루며 살아온 한날한시를 축복이며 은총임을 깨닫고 헤아려본 날이 몇 날이나 될까. 오욕과 칠정을 다스리지 못해 서로에게 상처 주기를 주저하지 않던 여물지 못한 날들이 더 많지 않던가. 두 손에 움켜잡으려만 했던 욕심으로 때론 손이 아프기도 하고 짊어진 삶의 무게가 두 어깨를 휘청이게 할 때도 있었지만 돌아보니 그것 또한 부부였기에 견딜 수 있었던 축복임을 이제야 깨닫는 아둔함을 어찌하랴.

눈만 뜨면 첩첩산중처럼 해결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고 엉킨 실타래처럼 풀지 못한 인생사가 아직도 많지만 모나지 않는 부부로 삶의 긴 여정을 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

없어진다는 것, 사라진다는 것은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신록을 자랑하던 푸르고 무성했던 잎새들이 누렇게 물들고 말라서 떨어진다는 것 또한 슬픈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산한 바람에 떨고 있는 나목이 낙엽을 고요히 보낸 것은 다시 맞이할 봄을 준비함이리라. 아내의 천국 영면을 준비하신 선배님의 처연한 가슴에 새봄에는 따스한 햇살이 먼저 채워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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