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수필가

스님의 장삼 자락이 큰 북 위를 춤추듯 넘나든다. 북소리에 다소곳이 집중하는 사람과 동영상을 촬영하는 이도 여럿이다. 내 앞 어린 남매는 호기심 가득한 몸짓에서 금방이라도 범종각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느껴진다.

사물 소리를 찾아 산사에 오른 참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내고자 산사로 오르는 길엔 적송과 단풍나무가 줄느런하다. 연화교를 건널 즈음 해는 서산을 넘는다. 태양의 여광이 남아 주변은 그리 어둡지 않다. 사천왕문에 들어서자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마당을 지나 범종각에 오르고 있다. 전각 왼편 금동 미륵 대불은 멀리서 보아도 그 모습이 웅장하다. 33m 장신인 대불님도 전각 지붕에 턱을 고인 채 사물의 울림을 기다린다. 법고 소리를 시작으로 저녁 예불이 시작된다. 불교에서 법고를 치는 것은 모든 중생이 번뇌를 끊고 해탈을 이루게 한다는 의미란다.

스님의 발길이 법고와 목어를 지나 범종에 머문다. 당목의 힘찬 움직임에 깊고 장중한 소리가 높은 능선을 타고 흐른다. 당목이 흔들리니 스님의 장삼 자락도 왼쪽으로 두 번 다시 오른쪽으로 한 번 헛몸짓에 따라 출렁인다. 순간 스님의 헛몸짓이 당목에 고통이 들어간다고 소리치는 것만 같다. 깨지고 부서지는 듯한 고통, 열반에 든 스님의 다비식에서 '스님, 불 들어가요'라고 소리치는 듯 애절한 몸짓만 같다. 당목의 몸짓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말하는 듯도 하다.코로나19는 깨어지지 않을 단단한 쇠뭉치만 같다. 차갑고 단단한 범종을 치는 당목의 심정이 바이러스와 마주한 우리의 심정과 같지 않을까. 학자들과 의료진은 정확한 치료제를 만들고자 고심 중이다. 바이러스와 마주한 사람들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잔뜩 주눅이 든 모습이다. 밖으로 대책 없이 나섰다가 황망히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는 이도 늘어난다. 범종의 깊은 울림은 한없이 무른 나무, 당목의 희생이 얻어낸 소리이다.

당목과 범종은 전혀 다른 물질이나 한 몸과 같다. 쇳덩이에 스민 깊고 장중한 소리를 이끈 주인공은 둘이 함께이어야만 가능하다. 당목의 재료인 나무는 약하다 할 수 있으나 그 의미는 강하다. 나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존재가 아닌가. 나무의 희생과 보시의 삶은 바로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의료진의 삶이지 아니랴.

스님이 마지막 사물 운판을 치고 범종각을 내려선다. 마스크를 쓴 귀여운 두 녀석이 그제야 부모의 품을 파고든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오래 지속되지 않기를, 희생을 마다치 않는 이들의 고난이 더는 깊어지지 않기를 기원한다. 우뚝 선 미륵대불의 시선이 어두워진 길을 나서는 중생을 향한다. 당목도 그제야 흔들림을 멈추고 고요한 산사의 밤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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