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교진 세종시교육감

제가 교직에 들어왔던 80년대에 교사는 ‘도구’였고, 학생은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국가가 정한 교사용 지도서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었고, 그것을 벗어나면 ‘불온교사’로 낙인 찍혀 교직에서 쫓겨났던 시절입니다. 일제 강점기 황국신민교육에서 시작해서 박정희정권의 유신교육을 거쳐서 전두환정권으로 이어지는 국가독점교육의 논리는 국가권력이 교사로 하여금 권력의 이데올로기를 학생을 대상으로 전파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80년대 중반, 교사들에 의한 교육민주화선언과 전교조의 출범 과정에서 ‘교육의 주체는 학생, 교사, 학부모’라고 선언했습니다. 당시 권위주의 정권으로서는 국가가 독점한 교육을 학생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이 그 결정권을 갖겠다고 하는 교육주체론을 받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1600여명의 교사들이 교단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참교육학부모회 간부 학부모들도 구속수감될 만큼 파장이 컸습니다.

그러나 학생, 교사, 학부모의 교육주체론은 이후 1998년 교육기본법에 ‘교육의 당사자’로 이름을 바꾸어 담겼습니다. 학생과 교사 그리고 보호자의 권리와 책무가 법률에 담긴 것은 대한제국 말기 근대교육이 도입된 이후 처음입니다. 더불어 학교운영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교사와 학부모가 학교운영의 주체로 올라섰습니다. 2000년대 초반, 교사들은 외형적인 민주적 학교운영을 뛰어넘어 근본적인 교육의 혁신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폐교직전의 경기도 남한산초등학교, 충남 아산의 거산분교 등에 모여든 선생님들이 공부하고 실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내어놓은 것이 바로 혁신학교입니다. 혁신학교는 교육부나 교육청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현장의 교사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제 경기도의 혁신학교가 15년, 세종에서는 6년의 실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혁신학교는 모델학교로서 학교문화와 교육과정을 교육의 3주체가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결정하는 학교입니다.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있었으나 이제 그 결과들을 다른 학교로 전파하는 일반화의 과정에 들어갔습니다. 앞으로 학교의 모습은 어떻게 발전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학교를 변화시켰던 주체는 학생, 교사, 학부모 중에서 교사가 상대적으로 더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한편, 학교를 다시 돌아보면서 학교란 어떤 일을 누가 하는 곳인가를 생각해봅니다. ‘학교는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곳’이라는 관점에서 발전해서 ‘학교는 학생이 성장하는 곳’으로 정의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결국 학교는 학생의 성장을 위한 곳이고, 그 성장은 학생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학생의 성장이 목적이고, 그 성장의 주체는 학생입니다. 여기에 교사의 조력과 기타 여러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해서 학생의 성장을 돕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교육개혁에서 학생의 주도성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라는 공부’가 아니라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학교이어야 합니다. 수동적 배움이 아닌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학습과 성장이 이뤄져야 합니다.이를 위해서 과감하게 ‘학생에게 권력을!’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제안합니다. 학교의 학생자치가 어른들의 학교운영에 일부 참여하는 시혜적 정책이 아니라 중요한 결정의 주체로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배울 것인지도 어른들이 선택해서 주어진 것 중에서 고르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것을 먼저 이야기하고, 어른들이 이에 맞추어 조력하는 수준의 교육자치, 학생자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어른들의 굳어진 틀에 갇히지 않는, 그리하여 더 큰 창의성과 혁신이 이뤄지는 교육개혁이 바로 미래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어야 합니다. 미래교육은 AI, IB, 에듀테크와 같은 ‘교육의 도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이뤄지는 배움과 성장의 과정에서 미래세대의 주도성을 높이는 것에서 시작해야합니다.

그래서 교육감 선거에는 선거연령은 만16세로 낮추는 것도 적극적으로 고려했으면 좋겠습니다. 교육감이 학생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더 깊이 듣도록 해야 합니다. 학생은 교육의 대상이 아닌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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