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대전을지대학교병원 산부인과 교수

며칠 전 한 환자로부터 뜨개질로 만든 인형을 선물 받았다.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무력감에 시달리다 1년 전부터 여성 호르몬 치료를 받고 호전된 환자다. 그녀는 브로콜리와 양배추 같은 채소로 식단을 꾸리고 운동도 하루에 1시간씩 하며, 뜨개질을 배우면서 최근 작품 활동도 한다고 했다. 하루하루 너무 즐겁고 새로 태어난 것 같다며 나에게 인형을 통해 감사인사를 전한 것이다. 사실 인간의 뇌는 일평생 동안 끊임없는 리모델링을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인간의 두뇌는 어릴 때 완성돼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믿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미완의 뇌를 가지고 태어나 출생 이후에 현저한 발달이 일어난다. 인간은 서른이 되도록 철이 들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이 인류 진화의 최고 산물인 뇌가소성이다.

뇌가소성이란 뇌가 외부의 자극, 학습, 경험에 의해 끊임없이 발달하고 리모델링되는 현상을 말한다. 인간의 삶은 여러 단계로 변하고 각 시기에 달성해야 할 목표도 다르다. 어린 시절에는 성장을, 성인기에는 번식을 해야 하고 노년기에는 주변을 돌보는 것이다. 이는 오직 인간에게서만 일어나는 특이적 형질인데, 바로 뇌가소성 때문이다. 사춘기 뇌세포는 에스트로겐을 이용해 뇌유도신경성장인자를 만들어 내면서 학습과 기억의 중추인 해마를 리모델링한다. 여성은 난소에서 에스트로겐을 직접 공급받지만 남성은 뇌에서 남성호르몬을 에스트로겐으로 바꿔 리모델링한다. 사춘기 4~5년의 노력이 인생 전반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진짜 중요한 시기는 갱년기다. 뇌가소성 촉진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갱년기 때 감소되면서 뇌유도신경성장인자를 잘 만들지 못해 해마의 기억력과 학습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극적 대응을 하고 운동을 하면서 관심사에 주의를 집중해 두뇌를 사용하면 해마에서 신경세포가 줄기차게 생성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나에게 선물을 준 환자는 뇌가소성을 몰랐지만, 그녀의 노력 만큼은 클래스가 달랐다. 환자는 아픈 것을 참지 않고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호전되자마자 곧바로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은 혈액량을 증가시켜 뇌를 키우고 뇌가소성이 증가시킨다. 또 먹는 양을 줄이고 브로콜리, 양배추 같은 십자화 채소를 섭취하는 것도, 뜨개질, 글쓰기, 새로운 언어 습득과 같은 배우기 어려운 도전을 하는 것 자체도 뇌가 리모델링하는데 도움을 줬다. 한마디로 몸과 뇌를 귀찮게 쓰면 쓸수록 중년에서도 뇌유도신경성장인자가 만들어지고 뇌세포가 생산되면서 우리의 뇌는 계속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불가사의하게 큰 뇌를 가졌다. 보다 정확하게는 가소성의 뇌를 가진 것이다. 사춘기 4~5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50세까지 인생이 결정된다면, 갱년기 4~5년을 어떻게 보내느냐 따라 남은 40년 인생의 클래스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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