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원 대전 YWCA 회장

▲ 정혜원 대전 YWCA 회장

어느덧 해 걸음이 지고 나면 뚜르르 뚜르르~ 풀벌레 노랫소리가 선선한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코로나19와 함께 하는 두 번째 가을을 맞이하고 있다.

가을 … 초록 들판은 어느덧 황금 들녘으로 넘실대고 과일은 따가운 가을 햇살에 한껏 농익을 것이다. 괜스레 마음도 풍성해지는 계절인 가을, 매년 이 맘 때가 되면 꼭 등장하는 말이 있다. 바로 ‘가을은 독서의 계절.’ 덥지도 춥지도 않으니 책 읽기에 안성맞춤이고, 또한 결실의 계절이니 책을 많이 읽어 마음의 양식을 거두자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독서의 계절에도 소외된 사람이 있으니 바로 ‘한글’ 우리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하겠다. 아니 요즘 세상에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있느냐 반문을 제기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다. 아직 한글을 모르는 사람, 이웃들이 주위에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2017년 우리나라는 늙음이 길어진 6~70대 그리고 8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 전체 인구의 14%를 넘어섬으로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살아남아 ‘한강의 기적’이라는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경제성장을 이룩한 세대이다. 한 나라가 경험하기에도 숨 가쁘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한 개인이 자신의 인생을 통해 오롯이 모든 것을 다 경험하면서 살아야 했으니 그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을까. 게다가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삶의 대부분을 희생하도록 강요받았던 세대이기도 하다.

1979년 대전YWCA는 이들의 설움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자 야간학당을 시작해 42년의 긴 세월을 배움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해 문해교실을 열고 있다. 그동안 수료생들이 4000여명에 이르며 현재도 6~70여명의 어르신들이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에 임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된 사연은 가난한 시절에 태어나 먹고사는 것이 바빠 학교를 다닐 수 없었고, 결혼 후 남편과 자녀 뒷바라지에 정작 본인의 인생은 없었다는 것이다. 하나 둘 자녀들이 독립하면서 인생의 허무를 느껴 이제는 자신의 삶을 위해 도전한 것이 ‘한글공부’이다. 한자한자 글자를 깨치면서 이제는 은행에 가서도 당당하게 출금표를 적을 수 있고, 손자녀의 그림책을 읽어줄 수 있다는 뿌듯함으로 노년의 삶에 만족감과 인생의 가치를 부여하고 계신다.

공자의 논어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면 불역열호(不亦說乎)야.

배우고 때에 맞춰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이 가을, 한글공부에 열심이신 시민학교 어르신뿐 아니라 우리 모두 배움의 기쁨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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