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수필가

▲ 이인숙 수필가

[충청투데이]  툇마루를 뚫고 오른 대나무가 천정에 닿는다. 사람이 없으니 제가 주인인 듯 솟아오른 것인가. 시골집은 한동안 우후죽순으로 솟아오른 죽순을 신경 쓰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누렇게 바랜 벽지와 달리 거울에 오색종이 꽃이 곱게 피었다. 거울에 금이 간 것을 조치한 삶의 흔적이다. 마침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뒤란의 댓잎 서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비스듬한 부엌문을 밀고 들어선다. 가마솥이 있던 자리에 솥은 간데없고 온기 사라진 아궁이가 시커먼 입을 벌리고 하품을 한다. 땔감이 차곡차곡 쌓여있을 자리를 보니 식구들로 북적이던 모습이 그려진다. 가마솥에 김이 오르고 눈물이 흐르면, 구수한 밥 냄새에 행복했으리라. 유년 시절 아궁이에 군고구마를 구워 먹던 생각도 떠오른다. 지금도 뒷산에 오르면 작은 방을 데울 땔감 정도는 얼마든 있으리라. 아니 집 주변 무수한 대나무를 베어도 땔감으론 충분하지 않을까. 조용한 이곳에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옛 주인이 사용하던 우물을 그대로 쓰고 싶다. 산에서 내려온 물줄기는 생활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작은 도랑에는 미나리를 심으면 좋겠다. 끼니마다 한 움큼 잘라 미나리 전도 부치고 얇게 썬 무와 함께 나박김치를 담을까. 양념에 조물조물 무쳐 먹는 겉절이는 봄철 달아난 입맛을 돋우리라. 작은 우물을 초목과 나누며 일찍 찾아든 밤을 맞으리라. 귀향을 환영한다는 듯 바람에 날아온 나뭇잎이 허공에서 빙그르르 맴돌더니 물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다.

 홀로 마당을 서성인다. 언니 오빠는 몇 해를 묵힌 집 상태를 살피느라 분주하다. 내 집에서 한 시간여 거리인 시골집을 더는 묵힐 수 없어 다 같이 보고자 찾은 참이다. 시골에 살고 싶다 노래를 부르나 생업을 병행하기엔 거리가 문제이다. 하지만, 산골로 들어와 살고 싶은 마음과 현실은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팽팽한 줄다리기 중이다. 마당에 채송화를 키우며 사는 삶을 꿈꾼다. 아니 넓은 집이라면 엄두를 내지 못하리라. 평소 게으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내가 아닌가. 작은 마당에 작은 방 그토록 좋아하는 툇마루가 있으니 무엇이 더 필요하랴.

 가족이 함께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꾸미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이미 작은 마당엔 저마다 소원하는 꽃들이 넘실거린다. 채송화를 심자는 언니와 분꽃과 접시꽃을 가꾸자는 나, 아이들도 저마다 좋아하는 꽃 이름을 대느라 목소리를 높인다. 수국과 해바라기까지 심으려면, 사람이 지나다닐 공간이 있으려나 싶어 절로 웃음이 난다.

 산골에서 자란 탓인가. 마음은 무시로 흙과 나무를 찾아 산골을 맴돈다. 작은 방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쓴다면, 더 무엇이 부러우랴. 산골 작은집에 사람의 훈기가 넘치는 그 날을 꿈꾸며 사립문 없는 집을 나선다. 마루에 우뚝 솟아오른 대나무가 주인인 양 푸른 잎을 펄럭이며 우리를 배웅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