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 수필가

불빛 탓인지 깊이 잠들지 못한다. 한참을 뒤척이다 잠자길 포기한다. 창밖 산책로에 가로등 불빛이 환하다. 낮의 모습과는 달리 의자와 가로등 두 물상만이 어둠을 비켜서 있다. 나그네의 쉼터인 의자와 어두운 산책길을 밝히는 가로등, 특별할 것 없는 두 물상의 조화가 새삼스럽다.

불빛 때문에 잠을 못 이룬다는 말은 핑계이다. 며칠간 신경 쓸 일이 많아 생각이 많아진 탓이다. 휴일에 집안일을 제쳐두고 깊은 잠에 빠진다. 주말 내내 누운 자리에서 꼼짝 않았으니 밤이 온들 잠이 오겠는가. 바늘처럼 날카롭던 신경은 느슨해졌으나 몸 안의 스트레스가 한순간에 사라지랴. 충분한 휴식으로 몸과 마음은 한결 가볍다. 어둠이 내려앉은 호젓한 산책로 풍경을 바라보다 의자에 마음이 머문다.

평소엔 눈에 들지 않던 의자이다. 이곳에 오래 살았지만, 산책로 의자에 쉬어가는 사람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산책로에는 벚나무와 단풍나무, 향나무가 있어 계절마다 보기가 좋다. 덕분에 멀리 가지 않아도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득 유년시절 고향집 마당 멍석위에 누워 재잘거리던 때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더위를 피해 마당에 멍석을 펼쳤다. 이어 어머니는 찐 옥수수를 소쿠리 가득 내오셨다. 저녁을 먹은 후이지만, 누구도 배부르단 말없이 달게 먹었다. 밤하늘에선 무수한 별들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았다. 우리는 옥수수를 입에 문 채 서로 별자리 이름을 대느라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별자리의 이름을 몰라도 대수롭지 않은 호시절이었다. 우린 그렇게 재잘거리다 멍석 위에서 잠이 들곤 했었다.

멍석은 이제 그 흔적을 찾기 쉽지 않다. 멍석을 펼치던 자리에 의자가 줄 맞춰 자리한다. 분위기가 사뭇 엄숙하고 예의를 갖추어야 할 것만 같다. 멍석 위에서처럼 뒹굴거나 누울 수도 없다. 아니 산책로의 갈색 나무 의자라면 편안히 누울 수 있으려나. 그러고 보니 산책로의 긴 의자가 투박한 멍석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부담 없이 앉아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거나 간혹 둘 서넛이 앉아 별자리를 바라 볼 자리로 모자람이 없지 않은가. 멍석의 모습과는 사뭇 다를지라도 그 쓰임은 닮았다. 하지만, 모든 자리가 어찌 휴식의 뜻만 품고 있으랴. 한 치 양보도 용서치 않는 자리도 있다. 우리네 삶, 생업의 자리는 소리 없는 경쟁 중이다. 강하고 든든한 자리 누구에게도 흔들림 없는 자리를 얻고자 긴장을 멈출 수 없으리라. 누구나 노력의 결과에 화합하면, 그 과정이 어찌 힘겨우랴. 하지만, 현실은 불필요한 경쟁과 피로감에 쓰러지는 이도 적지 않다. 카피라이터 정철 작가는 자리에 대한 해석을 '앉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어서기 위한 자리. 의자에 앉는 시간은 피로와 조급을 내려놓는 시간. 앉아야 선다'라 적고 있다. '앉아야 선다'는 문장을 반복해서 읽는다. 휴식의 자리이든 경쟁의 자리이든 삶의 순환을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인가.

오늘도 생업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훗날 산골 흙 마당에 투박한 멍석을 깔고 누릴 휴식을 기대하며 마음자리를 정돈한다. 산책로의 가로등 불빛이 유년 시절 마당에서 올려다보았던 그 별빛인양 반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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