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옥 수필가

십 수년 만에 불어 닥친 한파로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참으로 매섭다.

칼바람을 피해 뛰어가던 중 건물 틈새를 비집고 나온 푸른 잎사귀 앞에서 발을 멈췄다. 이 엄동설한에 그것도 콘크리트 건물 틈바구니에서 삐죽이 내민 여린 생명이 무얼까. 추위를 견디느라 힘에 겨웠는지 푹 주저앉은 몰골을 보듬고 보니 민들레다. 여린 잎사귀 아래로 굵은 뿌리가 튼실하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것이 느껴지는 것을 보아 살아있음이 분명하다.

하필이면 왜 딱딱한 시멘트 건물 틈새의 척박한 곳에 터를 잡고 뿌리를 내렸으며 무엇이 그리 급하여 이 엄동설한에 무모하게 싹을 틔웠을까. 섣부른 판단으로 고난을 겪는 민들레 생성이 안쓰럽고 애처로워 나직이 속삭였다.

"애썼다. 견디고 살아오느라 애썼다"

내게도 유독 추웠던 겨울이 있었다. 그해 불어닥친 외환위기와 유류파동은 한국경제를 위기로 흔들었고 그 무렵 욕심을 부려 확장한 우리사업장도 바람을 피해가지 못하여 한순간에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렸다. 손에 쥐었던 거지반을 맥없이 놓고나니 남은 것은 세상을 향한 원망과 질타, 그리고 회한뿐이었다. 십 수년을 동동거리며 일궈놓았던 소유물들을 잃은 허탈감은 엄동설한 동장군의 위력보다 더 강하게 자존감을 누르고 위축감에 떨게 했다.

시련 앞에서 가장 힘겨워하는 사업체의 선봉장이자 가장인 남편에게 따뜻한 위로나 격려 한마디를 건넬 정신적 여력마저도 그때 내게는 없었다. 피폐해진 마음은 가시돋친 말들로 서로의 아픈 상처만 골라내 찌르기에 급급했을 뿐.

손에 담을 수 있을 만큼만 손에 쥐었어야함이 옮음이었고 손바닥 안에 들어갈 만큼만이 내 것이란 걸 알기까지는 몇 번의 겨울을 더 보내고서야 깨우칠 수 있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 분명 고통도 끝은 있다. 고난의 세월을 포기하지 않고 섣부른 판단이 불러온 과오가 만들어놓은 위기를 발판삼아 욕심을 걷어내고 진실한 삶을 소중하게 여길 때 비로소 인생의 순풍에 돛을 내릴 수 있었다. 손에 쥔 모든 것들을 내 것이라 여기며 하나도 놓지 못하고 버겁게 짊어지고 가려던 욕심을 털어내니 홀가분한 하루가 얼마나 참 행복인지를 이제야 깨닳은 아둔함을 어찌할까.

지독히도 추웠던 지난날들도, 망연자실할 만큼 아팠다고 느꼈던 실패도 이젠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기억들로 남아 아스라하게 떠오르는 추억이 되었다. 상처 난 마음을 다독이지 못하고 서로를 질타하던 편협한 인성과 혹독하게 추었던 겨울의 상흔들마저 매만지며 이젠 도닥여 주리라.

"견디며 사느라 참 애썼다"

민들레 홀씨가 어찌하다 불모지에서 뿌리를 내렸지만 오늘의 혹한을 견뎌낸다면 반드시 건강한 줄기에서 더 탐스런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이제 남녘의 훈풍이 아지랑이를 앞세우고 봄 햇살이 드리워질 날이 그리 멀지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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