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미 백석대학교 학사부총장

1996년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 중에 캐롤 길리건(Carol Gilligan)이라는 여성 심리학자가 있었다. 이는 남성 중심이던 당시 여성의 목소리를 반영한 시각으로 심리학, 윤리학, 여성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였다.

‘다른 목소리로 (In a Different Voice)’라는 책에서 보여준 길리건의 주장은 단순했다. 개인이 무엇을 하고 안하고를 결정하는 판단력이 도덕성을 좌우하는데, 특별히 여성의 경우 이 판단의 기저에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돌봄의 문제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돌봄과 타인에 대한 돌봄 두 가지 중에서 어느 쪽을 어떻게 강조하는가에 따라서 여성의 도덕 발달이 세 단계로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자기 돌봄 단계에서는 남자나 여자의 차이가 거의 없다. 순전히 자신의 욕구와 필요에 입각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고자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자 한다. 아직 사회성이 채 발달되지 않아 주위 사람을 배려하지 못하는 아동이 대부분이지만 그렇다고 어린 아이만 이 단계에 속하지는 않는다.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자기 돌봄에만 급급한 이들이 있음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타인 돌봄 단계이다. 현실적으로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자신만 돌보기는 어렵다. 타인을 도외시하고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사람은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배우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와 같은 사회화 과정이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보다 분명히 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일종의 '모성적' 책임감을 갖고, 자신이 아닌 타인의 필요에 관심을 쏟을 때 비로소 여자로 인정받는 것이다. 이제 이들은 끝없이 희생하고, 봉사하고, 뒷바라지하고, 수발드는 것으로써 착한 여자로 완성되어 간다.

그러나 다행하게도 2단계에 머무르지 않고 3단계로 나아가는 여성들이 적지 않다. 3단계 진입자들은 자신의 대인관계 그 자체에 대해 심각하고도 근본적인 성찰을 진행한다.

△과연 자기희생이 늘 선한 것인가?

△남들로부터 착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이 왜 이리 중요한가?

△내가 나를 챙기는 것이 그렇게나 이기적인 것인가?

더 이상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고정되기보다 나의 필요를 채우는 것 역시 내 책임임을 인정하면서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감정과 필요를 진지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직시하게 된다.

결코 쉽지 않지만, 마침내 타인을 돌보는 것만큼이나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비록 착하다 소리를 듣지 못하더라도 스스로에게 떳떳하기를 결단한다.

이 세 번째 단계를 자신과 타인의 상호성이라고 부른다. 자신과 타인이 상호 연결된 존재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자기 돌봄이 결국은 타인을 간접적으로 돌보는 것임을 깨닫고 죄책감 없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발달단계가 과연 여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인가? 나는 오히려 우리나라 중년남성들에게서 타인 돌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본다. '가장'으로서, 우리 옛 어머니들만큼 이타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희생하고, 또 희생하는 것이 옳다 여기는 이들에게 감히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돌보라 말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타인을 돌볼 책임도 있지만 자신으로부터 돌봄을 받을 권리도 있기 때문이다.

자녀와 노부모 사이에 끼어있는 중년들이여, 이제 기타를 꺼내고, 낚싯대를 구입하고, 친구를 불러 유쾌하게 웃어보시라. 내 자신을 돌보는 것이 정녕 내 가정을 돌보고, 동료를 돌보고, 이 사회를 돌보는 것임을 경험해 보시라. 그리고 외치시라, "브라보 마이 라이프!" 때로는, 이기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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